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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 김선우(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민달팽이는 껍데기집이 없는 달팽이다. 찬 이슬과 매서운 바람과 폭우와 거친 눈보라를 피할 곳이 따로 없다. 돌아갈 곳도 끊어버렸다. 지나온 길은 무너뜨렸다. 근심과 슬픔이 오면 온몸으로 맞이한다. 실컷 울고 가던 길 또 간다. 나아갈 길과 다가올 내일을 미리 헤아려 홀로 열어 나간다. 뿔처럼 단단한 의지를 세우고서. 오직 스스로를 의지하면서.
두고 갈 것이 없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버렸으니 참 홀가분하다. 밀고 밀며 가는 이 순간의 꽃핌만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을 횃불처럼 살기 때문에 마음은 늙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생화(生花)로 만든 꽃다발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깨끗한 달 가듯이 먼 데 가는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김선우 시인은 시 ‘고쳐 쓰는 묘비’에서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라고 썼다. 온몸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할 삶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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