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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특검 수사에 몰입하고 있던 지난 며칠 사이, 두 개의 섬뜩한 국제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 우선!’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그 첫 번째 결실을 보았다는 기사이다.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17일간 1만2500㎞를 달려 영국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변화는 언론을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으니 여기서는 일대일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육로와 해로 두 개의 길을 통해 중국과 유라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스칸디나비아까지 연결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최대의 국가사업일 뿐 아니라 2차대전 이후 유럽의 부흥을 가져온 마셜 플랜의 12배 규모이다. 완성되고 나면 전 세계 인구의 65%, 그리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있지만, 옹호론자들은 물론이고 회의론자들조차도 최소한 이 사업에서 구경꾼으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다. 중국에서 출발한 기차가 런던에 도착했다는 것은 일대일로의 첫 길을 열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트럼프의 미국이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 길을 가는 동안 중국은 유럽으로 뻗어나갈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초유의 거대 프로젝트는 엄청난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돈은 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나온다. AIIB는 일대일로의 돈줄이자 동시에 금융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에 맞서는 중국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57개 주요국이 참여했고, 한국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AIIB에 참여하면서 5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냈다. 미국으로서는 단단히 서운할 일이었는데, 그 와중에 전승절 행사까지 참석하면서 화를 돋웠다. 그 후 한·일 간 각종 외교분쟁에서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분담금의 대가로 받은 부총재직은 4개월 만에 날아가고 그 자리는 국장급으로 강등되었다. 그뿐인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갑작스러운 방향선회로 이번에는 중국의 각종 보복조치에 시달리고 있다. 돈은 돈대로 내고 양쪽에서 뺨을 맞고 있는 격이다.

돈도 냈고 뺨도 맞았으니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물류·문화·정치의 망을 통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인 고성장 경제에 동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자리 부족, 양극화, 성장동력 상실, 저출산 등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모두 탈산업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제조업이 줄어들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것이 앞서 나열한 모든 문제들을 일으킨다. 경제성장, 계층이동의 사다리, 낙수효과 같은 기회의 문들은 탈산업화하는 국가가 아니라 산업화하는 국가들에 있다. 중앙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등 일대일로를 따라 펼쳐지는 기회에 우리도 동승해야 한다. 일대일로의 대부분 경제활동은 소위 ‘경제회랑’을 통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6개의 경제회랑이 있는데 한국이 포함되어야 할 동아시아 경제회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일대일로와 매우 비슷한 구상에서 출발했다. 돈도 냈고, 뺨도 맞았고, 구상도 같다면 이제야말로 실익을 챙겨야 할 때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은 느닷없는 개성공단 폐쇄로 실익을 챙길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린 자해적 정책이었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개성공단 부활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강화된 대북 제재로 인해 이제 와서 되살린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나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후보들의 공약은 두 개의 큰 틀 안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는 코앞에 닥친 인구절벽·소비절벽 앞에서 적어도 20년을 내다본 정책의 장기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와는 달라진 미국과 중국의 양대 헤게모니 격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장과 한반도 평화를 얻어낼 것인가라는 글로벌 전략이다. 주요 주자들이 내놓고 있는 공약들에서 이런 큰 틀의 사고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유엔의 수장을 지낸 후보조차도 아직까지 이런 사고를 선보인 적이 없다. 그들의 준비 부족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직까지 한국에서 선거에 이기는 데 글로벌 전략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든, 정치교체든, 시대교체든 좋다. 그러나 그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 스스로가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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