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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행동과 표정에 자신의 짜증을 기어코 투사하여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인간을 마주했을 때의 황당함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자신은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 방법을 찾는다. 화가 나면 화가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는 이노이트족의 분노 해소법이 공유되는 것도, 기분 나쁜 상태로는 좋은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서다. 산책이나 명상이 현대인에게 치유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게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보편적 덕목처럼 다루어지기도 하는데, 사람의 관계를 결정하는 사회적 위치가 지나치게 간과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누가’ 그게 더 가능한지를 따져 묻고, ‘누구냐에 따라’ 어떤 여파가 형성되는지를 묻는다면 특정한 위치의 사람이 자기 기분을 더 신경 써야 함이 분명하다.

권력의 크기만큼 기분이 태도가 되었을 때의 파괴력도 커진다. 가부장적 집안을 보자. 자기 기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은 주로 누구였던가. 여파는 얼마나 큰가. 누군가의 태도로 가족들은 공포심을 느끼고 그 감정을 수년이 지나서도 떨쳐내지 못한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집안을 보자. 아이가 자기 기분대로 행동한들 부모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을 감추지 못한 아이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서 소리는 커진다.

조직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의 이상한 태도는 구성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당사자가 행동에 대한 책임을 혹독하게 져야 한다. 연인과 헤어져 슬퍼하는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슬픔이 분노가 되어 감금, 폭행, 살인 등의 단계로 나아가는 게 모든 성별의 특징은 아니다. 누구는 그러지 못하는데 누구는 그럴 수 있는 건 개인의 기질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구조적 차별’이라고 한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면서 여성가족부를 기어코 없애겠다는 대통령을 보자. 언행의 조심을 바라는 참모의 의견에 심기 불편을 드러내는 순간, 대통령의 기분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모든 연설마다 ‘자유’만 반복하겠는가. 연습 한 번만 하면 실수하지 않을 제식을 무려 국군의날 행사에서 까먹겠는가. 일거수일투족이 촬영되는 외교 현장에서 “이 XX”라는 말을 내뱉는 대범함은 늘 기분이 태도였던 일관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 태도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국민들이 느낀 피로감이 증명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술은 작가의 영감이 재현되는 것인데, 그게 보장될수록 사회에 울림이 크다. 영감이 권력을 향해 사용되면 공동체에는 득이 더 크기에 ‘표현의 자유’가 합의되었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작 ‘윤석열차’도 기분이 태도가 되어도 되는 유일한 방법을 통해서 세상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권력의 태도가 자기 기분을 감추지 못하면 세상이 엉망이 된다. 예술작품이 정치적이라고 엄중 경고라니,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대통령 눈치 보게 되어서 기분이 안 좋았다면 일단 걷기를 바란다. 물론 눈치를 보게끔 한 그분은 걷기에 명상도 곁들였으면 한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연재 | 시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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