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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얼마 전 개·고양이 식육금지 집회에 맞불을 놓으러 나온 이들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다보면 참 답이 없는 시빗거리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인식론 차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윤리 의 문제라면 정말 끝이 없다. 개고기 논쟁이 일례다.

얼마 전 털북숭이 한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키우자는 가족들의 잇단 요구를 수년째 거부하며 “진짜 데려오면 물 올려놓고 있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라 설마 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꼬물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무장해제됐다. 3개월이 안된 몰티즈다. 이름은 숍에서 부르던 대로 ‘소다’. 몸무게는 900g대였다. 배내털이 더부룩하다. 생존본능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미처 아이를 키울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 ‘댕댕이’를 통해 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참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는 유모차 앞자리에 서너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뒤칸에는 강아지를 태우고 다녔다. 강아지 나이가 12살이라는데 사람으로 치면 약 70대 어르신이다. 아들과 반려견을 유모차에 함께 태워 밀고 다니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은 채 스스로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 불편했다. 그런 내가 소다가 집에 온 후부터 스스로를 “아빠”로 부르고 있다. 전용 먹이 분배기(디스펜서)도 사고 폐쇄회로(CC)TV까지 들였다. 그렇게 이 녀석은 내게로 와 ‘존재’가 됐다. 오히려 그를 통해 내가 대자연 속 작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스타필드고양의 ‘몰리스’가 소다의 제2의 고향인 셈인데, 불현듯 이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이른바 공장사육의 산물이라면 씁쓸하다. 약 한 달 전 궁금해서 몰리스에 가봤다. 그런데 소다 바로 옆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녀석이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포메라니안 ‘후추’다. 그나마 앞에 있던 포메라니안과 같은 2월10일생이던 몰티즈 ‘설탕’은 새 가족을 만난 모양이다. 포메라니안은 5개월이 돼서 이미 부쩍 커버렸다. 소다를 데려올 당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졸라대던 녀석이었다니, 우리 가족이 됐을 수도 있다. 아직 친구가 쇼윈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다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얼마나 심정이 짠할까 싶다.

16일은 말복이다. 옛 문헌에 보면 이날엔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우리네 문화의 일부로 보인다. 충청 사투리라는 ‘개 혀?’라고 말하는 건 자유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을 ‘야만스럽다’고 비난했다고 해도 인습과 전통을 가를 잣대는 따로 없다. 맞불집회에 나온 팻말이 맞을 수도 있다. 반면, ‘개나 사람이나 존재의 귀함은 동일하다’고 말할 자격 또한 있다. 심지어 종교 차원으로 보자면, 강아지를 키우면서 불교가 친근하게 여겨진다. 윤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산짐승, 들짐승은 물론 풀벌레까지 새삼 귀히 여겨졌다. 지난주에는 2년여 키운 어항 속 버들치를 공릉천에 풀어줬다. 뿌듯하면서도 찡했다.

사실 식용 논란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반려동물 유기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반려동물 유기는 벌금 30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버리는 행위라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자신이 반려동물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맞는지 솔직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버린 반려동물의 상당수가 식용으로 둔갑한다는 사실 또한 알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다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이 작은 소다를 통해 새삼 세계관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요즘 좀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병역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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