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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반가운 소식에 오히려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지난 4일 들려온 소식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한 후 교육부가 ‘교복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언급하기 이전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몰랐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집이라면 고구마 수십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셔츠는 일상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진열을 위한 마네킹용 같다. 활동하는 사람이 입을 것이 못된다. 가슴선을 강조하고 잘록한 허리선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옷은 편히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꽉 조인 저 옷을 입고 버스 손잡이는 어떻게 잡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있으면 팔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동구매한 치마의 경우는 통이 너무 좁고 길이가 짧아 심지어 학교 주선으로 수선집에서 무료로 길이를 늘였을 정도다. 바지를 입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면? 대부분 여학생용 바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용 바지를 입으라고 한다. 교복 상의를 다림질하다가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디자인 탓에 등판조차도 평면이 아니어서 아이가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아예 다림질을 포기했다.

그간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나 같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왜들 참았지’ 하며 답답해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수년간 학교에, 교육청에, 교복 제작업체에 항의하고 건의해왔다. 나 역시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학교에서 개선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개는 그대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대통령이 나서야만 해결될 일이었던가. 소비자가 불편하면 의견을 반영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굳이 최근의 ‘탈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까지 갖다 붙일 일이 아니다. 학교와 관계 당국이 뭉개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왔다.

대통령의 교복 지시사항을 접하며 2005년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소아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훈이(8)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지훈이는 근육 경직과 경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미용성형용으로 분류돼 있는 보톡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한 병에 50만~60만원으로 워낙 고가인 탓에 지훈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싸울 시간도 물적 능력도 없어 자신들만 탓할 뿐이었다. 지훈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문제점을 고발한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를 접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날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취재 당시까지 ‘(소아뇌성마비용 보톡스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보건복지부는 즉각 검토에 들어갔고 3개월 만인 그해 9월부터 소아뇌성마비 치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행됐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고 더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온당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의 고통과 부모들의 슬픔은 한동안 더 이어졌을 것이다.

어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곳에 닿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힘들다. 주변의 침묵과 때론 반대의 아우성으로 잦아들기 십상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수평적 공간을 통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교복 청원을 비롯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활성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청원 사례들도 많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다. 상식적인 통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나무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 부드러운’ 뿌리를 갖고 있다. 보드랍고 열린 그 끝으로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 바람을 걸러내고 통과시킨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보드랍고 열려 있는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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