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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층은 비리로 제 몫만 챙기고
약자를 옭아맨 수단이었던 도덕…
부패방지 등 상위욕구 분출하는 요즘
도덕, 사회와 개인에게 여전히 유효”


해질녘 주택가를 산책하다 목격한 장면이다. 한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아들의 줄넘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몸무게가 많아 보이는 아들은 연속 세 번을 넘지 못한 채 발목에 줄이 걸렸고, 줄을 풀어내는 동안에도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의자에 앉은 엄마가 소리쳤다. “어서 안 해? 아직 스무 개도 못 채웠어!”

또 다른 장면도 있다. 보도 턱에 걸터앉은 아버지가 아들의 테니스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테니스 공 끝에는 줄이 매달려 있고, 그 줄은 큼직한 돌덩이에 눌려 있었다. 아이는 공을 허공으로 던진 후 라켓을 휘둘렀다. 줄에 묶인 공은 저만큼 날아가 바닥에 튕겨진 후 아이에게로 돌아왔다. 공을 되받아치는 아이는 돌덩이나 땅바닥을 상대로 테니스를 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동안 보도 턱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옳지, 잘한다!” 소리치며 과도한 칭찬을 쏟아냈다.

아마도 저 부모들은 자녀가 동일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먼저 줄넘기를 하고, 아빠가 함께 테니스를 칠 때에만 아이는 그것을 배우며 성장한다. 저런 상태에서는 운동이 되기는커녕 야단맞는다는 박해감, 통제당한다는 불안감만 커질 뿐이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에서 국민으로 사는 일이 저 아이들 입장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지키지 않는 법과 도덕을 국민에게 강요하면서 갖가지 상벌제도를 만들어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는 ‘초자아’ 개념이 있다. 본능과 파괴 충동을 향해 이끌려가기 쉬운 자아를 견제하는 정신작용이다. 초자아의 작용 덕분에 개인의 내면에는 양심의 목소리가 생기고,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에 주입되는 부모의 금지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 다음 세대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상징계’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언어, 관습, 제도 등 사회에 통용되는 상징들을 내면에 받아들여 그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성장의 중요한 측면으로 보았다. 초자아나 상징계는 한 개인의 도덕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정신 기능이다.

나는 자주 “도덕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는 의문과 맞닥뜨렸다. 우리 사회는 돈이나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를 향해 강펀치를 날리면서 “이것이 법이다!”라고 외치거나, 부정으로든 비리로든 제 몫만 챙기면 그만인 사회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바르고 정직하다는 것은 무능력과 동의어처럼 보였다. 도덕이나 윤리는 우매한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거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듯했다.


실존주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병리적 정신분석학에 대항해 발전한 학문이다. 창시자 아브라함 매슬로는 건강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연구해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을 정립했다.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 신체적·정서적 안전에 대한 욕구, 관계 맺기와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 존경과 명예를 추구하는 자기 존중의 욕구, 마지막으로 자기 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그는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보다 상위에 있는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염두에 두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온 비리가 이해된다. 그동안 우리는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계에 있었던 셈이다. 먹고사는 일이 가장 시급해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바로 그 결핍감과 불안감을 추동력으로 하여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바로 그것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결핍감이 어느 정도 충족되자 추동력은 떨어졌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장년층 남자 중에는 많은 돈을 가지고도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무의식에 새겨진 가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책임감이나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감사하게도, 요즈음 우리 사회는 그 지점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부패 방지와 관련된 법안, 옳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법안, 간통제 폐지 등의 논의는 우리 사회가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표로 보인다. 정서적·신체적 안전에 대한 욕구, 잘 소통하고 관계 맺는 사회적 욕구 등 상위 욕구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지금 이 지점에서 퇴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두 번째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불안과 결핍감의 추동력이 아니라 도덕과 신뢰, 이타심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는 도덕이 개인의 삶에 유익하고 실용적인 덕목이라는 것을 믿는다. 말로써, 논리로써 설명해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도덕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사는 동안, 개인적 욕심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옆길로 샐 때마다 삶에 미묘한 장애가 생기곤 했다. 글쓰기가 안되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대인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어렴풋이 두 사안 사이 관계를 직감하고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중단하면 일이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그 법칙은 내가 관찰한 타인들의 삶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매슬로가 최상위 욕구로 꼽은 자기 실현은 분석심리학자 융도 제안한 개념이다. 융은 자기 실현이라는 용어 속에 많은 것을 담았다.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을 모두 통합한 다음 내면의 신성과 합치되는 지점을 자기 실현으로 보았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이 있다’는 종교 관점을 포함한 것이다. 매슬로는 자기 실현 개념에 도덕성, 숭고함, 자연의 법칙 등을 포함시켜 설명한다. 저 이론들은 “덕(德)을 닦아 도(道)에 이른다”는 노자의 명제를 풀이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이자 사회 구성원에게 공동선이다. 인간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숭고한 삶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다. 지금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잡음이 많은 법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욕구가 앞서 나아간 다음 뒤따르는 후속 과정일 뿐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건강한 도덕성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온 국민이 자기 실현 욕구를 위해 노력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봄날 같은 꿈도 꾸어본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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