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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작가들을 보면 저마다 고유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자정부터 집중력을 발휘하여 새벽까지 글쓰고 아침에 잠든다. 어떤 이는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시골의 고독한 환경 속에서 글을 쓴다. 내 방식은 평범하다. 한밤에 푹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오전 시간을 사용한다. 그 시간에 맑은 정신과 고요한 마음이 유지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은 정오 이후로 미루어 둔다.

몇 해 전 그날은 이상했다. 잠깨는 순간부터 마음이 어지러우면서 명백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차를 마셔도 산란한 마음이 수습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도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다. 전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인데 느닷없이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면서 온 신경이 허공으로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실내를 우왕좌왕 돌아다니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긴급속보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으며 아침 내내 나를 휩쓸었던 불안감의 정체를 이해했다. 다음 순간 불안감은 울음과 함께 해소되기 시작했다.

우리 감정이 수직적으로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되는 것처럼, 수평적으로 동시대인 사이에서도 서로 전염된다. 한 사회에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구성원들은 예민하게 서로 정서적인 삼투현상을 느낀다. 냄새가 절로 맡아지고 소리가 절로 들리는 것처럼 불안감이나 분노도 절로, 고스란히 구성원의 정서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과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그대로 행동화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외부에서 오는 감정, 정서에 휩쓸려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 이들은 누군가가 화를 내면 곧바로 대응해 싸움을 일으킨다. 자녀가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면 그것을 소화시켜주지 못한 채 짜증으로 반응한다. 친구가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면 위로해주기보다는 함께 걱정을 키워간다. 점검되고 이해되지 않은 개인의 감정들은 집단 속으로 번져가면서 마침내 사회현상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사회 구성원이 저마다 심리적 자기 경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 자기 느낌과 타인의 감정, 자신의 소망과 타인의 욕구, 자기 현실과 타인의 삶을 서로 구분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고스란히 휩쓸린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감정의 확산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타인의 행동에 격하게 분노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불안감의 늪으로 빠져든다. 정보나 패션도 감정의 유행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것은 자주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듯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 “동시간대에 ‘수평 전염’ 되는 감정
위로보다 함께 걱정만 키워가
저마다 ‘정서적 자기 경계’ 없는 탓
해법은 자극에 ‘멈춰서 생각하기’”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경계가 취약한 이유는 유년기에 견고한 자기 개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자녀를 침범하는 부모,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의 심리적 경계를 거듭 무너뜨린다.

자기 걱정을 한없이 자식에게 털어놓는 엄마, 술 취한 채 화내는 아버지의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져 불안과 분노의 감정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이 평화롭기를 소망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모든 타인의 감정이 곧바로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가부장제 같은 집단 문화도 개인이 자기 경계를 갖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자주 부모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교육받는다. 내 삶과 부모의 삶에 경계가 없고, 내가 할 일과 가문의 업적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문화에서는 자기만의 감정이나 소망을 갖는 일에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국가와 민족을 칭송하는 사회도 개인의 자기실현 노력을 비겁한 이기주의로 오해하기 쉽다.

정신분석학은 감정의 역전이 현상을 치료 도구로 사용한다. 분석가가 내담자의 무의식에 도달하는 빠른 길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전이 감정을 점검하는 것이다. 역전이를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을 읽고, 엄격한 중립을 지키면서 무의식을 해석해주고, 무의식의 욕구에 붙은 에너지를 제거하는 치료 과정을 밟는다. 정신분석가에게 가장 큰 금기는 역전이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자기 계발서들도 비슷한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관계 맺기 기술 중 상대방이 가하는 자극에 대해 ‘멈춰서 생각하라’는 내용을 본 적 있다.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감정적 자극에 반응하지 말라는 뜻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가 어려운 이유는 정서적 자기 경계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적 자극뿐 아니라 평가, 판단, 심지어 글이나 농담에도 격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일쑤다.

뒤늦게라도 정서적 자기 경계를 갖고 싶다면 정신분석가가 치료 현장에서 내담자에게 해주는 작업을 스스로 해보는 방법이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그 감정이 내면에 뿌리를 둔 감정인지 외부에서 전해진 감정인지 구분해보는 것, 내면의 무의식이라면 근원을 찾아내 에너지를 제거하고 외부에서 온 감정이라면 반응하지 않으면서 다만 지켜보는 것. 그것은 실은 불교의 지관 수행법과도 같은 내용이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보살펴본 사람은 알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많은 부분이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아가 그 근거없는 감정이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임을. 실체 없는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마침내 파도처럼 스러진다는 사실을. 그러면 삶의 에너지가 절약되어 보다 창의적인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일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심리적 자기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요즈음은 경제적 불안감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번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이들도 불안감에 감염된 듯 흔들리고 머뭇거린다. 그런 일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자기 경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경제도, 스포츠도, 정치도 실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한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거나, 시골에 틀어박혀 작업하는 작가가 원하는 것도 견고한 정서적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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