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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심은 분노보다 냉혹한 감정
누구든 ‘신데렐라의 언니’ 될 수 있어
불필요한 감정을 퍼올리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결국 승자”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 구절을 외우는 숙제를 받았다고 한다. 소년 김용옥은 어느 날 성경 구절 하나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었다. 어린 철학자는 온 지혜를 동원해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뜻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원로 철학자가 된 선생님이 기독교 유적을 찾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쓴 책에 묘사되어 있는 유년의 기록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소년을 상상하면서 슬그머니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내 뒤통수에 매달려 있었던 구절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였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상장을 자랑하고, 진기한 학용품을 자랑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재능을 자랑하도록 독려받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뒤통수가 땅겼다.

자랑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 것은 인간 심리를 공부한 이후였다. 한 사람이 내보이는 자랑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결핍감을 선사하고, 결핍감은 즉각 그들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시기심을 촉발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랑, 박탈감, 시기심, 분노, 공격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얼마나 빈틈없이 작동하는지 일상에서 목격할 때마다 놀라웠다. 신데렐라를 구박하는 이복 언니들만 나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과 선함, 행운을 독차지한 이를 만나면 누구나 신데렐라의 언니가 될 만했다. 자본주의 시장은 자랑하기와 시기하기를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프로이트는 ‘페니스 엔비’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시기심이 여자들이 남자의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느끼는 결핍의 감정인 것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 다음 세대 학자인 멜라니 클라인은 시기심이 출생 직후 엄마의 젖가슴을 상대로 촉발되는 감정이라고 제안한다. 엄마가 좋은 것을 불룩하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아기에게 조금씩 제한적으로 준다고 느끼는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근원이 어디에 있든 시기심은 분노보다 냉혹한 감정이다. 분노는 사랑이 먼저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사랑 대상을 향해 촉발되는 감정이다. 시기심은 특별한 이유나 특정 대상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산된다.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나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즐겨 시청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경쟁을 통해 한 명의 모델이나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외국 프로그램이었다. 예심을 통과한 열 명 남짓의 후보자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재능을 선보이면서 한 명씩 탈락하고 마지막으로 최종 우승자 한 명이 선발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프로그램을 즐길 때 나의 관전 포인트는 그들이 펼쳐 보이는 재능이 아니었다. 동일한 시공간에서 서로 경쟁하게 된 낯선 이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생존법, 경쟁 전략 등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결과에 따르자면, 탄복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이가 언제나 우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은 경쟁 초기에 두각을 나타내다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쉽게 타인들의 시기심의 표적이 되어 따돌림당하거나 이유 없는 분노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다음 경쟁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물론 시기심을 표출하거나 모함과 공격을 경쟁 전략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했다. 그런 사람은 재능을 발휘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타인을 시기하고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재능을 낭비했다. 본래의 목적보다는 남들에게 잘 보이면서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이도 있고, 모든 타인을 말벌떼처럼 여기면서 양보나 배려 없는 경쟁에 몰입하는 이도 있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주요 생존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라는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집약적으로 보이는 경쟁 전략은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날마다 사용하는 생존법 바로 그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최종 우승자는 대체로 경쟁하지 않는 사람,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타인들의 갈등에 휩싸이지 않은 채 고요한 내면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를 퍼올리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으로 다양한 심리 전략을 사용하는 이들이 빠르게 정신 에너지를 소진해가는 동안 그들은 고요하게 비어 있는 마음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갔다. 그런 이들은 경쟁 과정에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종 우승자가 된 후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다.

멜라니 클라인은 시기하는 사람의 심리적 해법으로, “자기가 가진 좋은 점들 알아차리기, 그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 시기하는 대상으로부터 배우기” 등을 제안한다. 시기당하는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과 덕목들은 그 사람이 인내와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기당하는 사람을 위한 해법도 있다. “외부의 시기심과 공격에 맞닥뜨리더라도 자신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을 것.”

“내가 홍길동이다!”라며 자신을 과시하는 문화, “남보란 듯이 살아주겠다”며 벼르는 문화에 젖어 있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을 이해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의 미욱함이 더 큰 잘못이다. 그럼에도 권력형 ‘갑질’이나 과시적 소비를 성찰하면서 조금씩 부끄러워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고마운 변화로 보인다. 인간사 길흉화복 변화를 64괘의 상징으로 풀이한 <주역>은 “오직 겸괘(謙卦)만이 모든 좋은 것을 가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김용옥 선생님의 이집트 여행기는 <큐 복음서>이다. 지금 수중에 없어 정확한 내용을 인용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글을 내 방식대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상태를 불교의 아공(我空)이나, 도교의 무위(無爲)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또한 “모든 좋은 것을 가진다”는 주역 겸괘와 같은 자리의 일이 아닐까 싶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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