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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12월 연말이었다. 휴대폰으로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저는 지금 큰 배들이 있는 도시에서 길을 잃고, 많은 것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일 때문에 두어 번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남자에게 온 것이었는데, 처음엔 ‘다 큰 남자가 이런 감상적인 메시지를 잘도 보낸다’ 싶어 무시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급기야 자살 직전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가느다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짜로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시달리겠다 싶어서, 심사숙고해서 답변을 보냈다.

“알이 꽉 찬 꽃게찜을 드세요. 소주도 한잔 하고요. 그 다음엔 포만감 속에서 일단 자고 보는 거예요. ‘길’은 그 다음날 찾아도 되니까.” 마침 그 전 주에 안면도에 가서 제철 꽃게찜 한 접시가 주는, 그 기적 같은 만족감을 체험했던 터였다. 탐욕스럽게 꽃게 다리를 빨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작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이런 확실한 방법을 더 일찍 알았다면 지난여름 그 악당 때문에 폭우 속에서 울고불고 그따위 청승은 떨지 않았을 텐데. 꽃게만도 못한 망할 놈의 사랑, 차라리 몹쓸 병이나 들어라!”

하루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지금 바로 그런 느낌이다. 내 평생 이렇게 고된 하루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각오는 물론 울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내 손으로 집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심지어 우리에겐 건축주이며 시공자로서 밑바닥 일당 잡부 일까지 내 손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정말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연이틀째 무릎으로 기거나 누워서 질질 몸을 끌며 콘크리트 타설할 부분에 얼어붙은 눈과 얼음을 녹이고 걸레로 닦아내는 작업을 할 때였다. 때 이른 한파 속에서 낮에도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해지기 전에 이 작업을 못 끝낸다면? 다시금 눈이 온다면? 얼음 때문에 기껏 죽도록 고생해서 쳐놓은 콘크리트가 무너진다면? 조지 오웰이 탄광 광부로서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위건부두의 갱에 들어갔을 때도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심지어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도 쉬지 못하고 평창 시내에 가서 연탄을 사다가 콘크리트 타설 아래 불을 지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밤 9시 무렵 하루 종일 추위와 막노동에 시달린 몸을 욕조에 담그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전 중인 사라예보를 방문한 수전 손택에게 어느 중년 여성이 했다는 말도 떠올랐다. “목욕 못한 지 16개월이 되었어요. 그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

샤워 후 늦은 저녁을 만들어 먹자 남편도 그제야 행복하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그래 이 맛이야.” 제철 꽃게 생각이 났지만 그 대신 집에서 만든 수제 돈가스에 차가운 막걸리 한 병을 내주자 남편이 했던 말이다. 돈이 없어서, 머리가 나빠서, 꼴에 자존감은 커서 몸이 좀 고생이지만 뭐 어떠냐 싶은 기분이었다. 격렬한 육체 노동 끝의 막걸리 한 잔의 맛은 하루키 같은 문단 권력자는 모르지 싶은 의기양양한 기분마저 드는 밤이었다. 심지어 땅콩 몇 알 때문에 화가 나서 뉴욕공항에서 수백명을 실은 비행기를 후진시켰다는 ‘월드챔피온 능력자’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 육체를 고생시키는 우리의 무능력이 새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 이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바로 그 땅콩 _ 트위터 캡쳐


1930년에 런던에서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겨우 ‘땅콩리턴’ 때문에 세상의 구경거리가 된 조현아씨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러셀의 충고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1.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보다 과소평가하는 편이 행복을 느끼기 쉽다.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뜻밖의 성공에 놀란다. 2. 적당한 음식에 만족하는 사람이 낫다. 미식가는 인생이 제공하는 즐거움의 절반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고 푸념하는 까다로운 사람과 비슷하다. 3. 자신이 맡은 일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사람은 극단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극단주의적인 경향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삶과 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

혹시 다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못해서 자꾸만 남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 이 대목에 방점을 찍어야 하실 듯.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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