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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동네적 풍경]돈 생각

opinionX 2014. 8. 4. 20:30

드디어 동네 친구가 생겼다. 새벽 다섯 시 좀 넘어 집 근처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가면, 나처럼 개를 데리고 나온 아저씨가 열심히 운동 중이다. 그 옆에는 아저씨의 개인 ‘순이’가 사슴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다. 저수지를 끼고 있는 공원이라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릴 만큼 꽤 넓은 호수 공원인데, 아저씨는 흔히 두 바퀴를 순이를 데리고 돌고 어떨 때는 세 바퀴도 도는 것 같다. 어지간히 일찍 가지 않으면 아저씨와 순이를 만날 수 없다. “얘를 이렇게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내가 집에서 얘를 이백 대 때리고 백 번 소리를 질러야 해요!” 즉, 집에서 한 살도 안된 순이가 아침에 치타처럼 제 맘대로 뛰도록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사고를 치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일부러 이른 새벽에 공원을 찾는다. 그래야 순이가 목줄을 하지 않고 치타처럼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아저씨는 공원의 쓰레기를 정리한다. 한번은 천변을 함께 걸어가면서 젊어 보이던 아저씨의 나이가 환갑이라는 것, 순이와 둘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의 팔에는 문신이 있는데, 옛날에 나쁜 짓 많이 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쓰레기를 줍는 일 같은 것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일이 들어오면 적은 인건비에 일을 하며 봉사 활동도 하느라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해도 남는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번뇌의 근원은 역시 ‘돈’이라는 것이 아저씨의 생각이다. “아 열 받아 죽죠, 옛날엔 그 돈 세 배 네 배 받고 일했는데 내가 세상에 지은 죗값 좀 갚자, 이러는데 제정신으로는 그 돈 받고 일 못 하죠.” 그래서 아저씨는 돈 생각 안 하려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쓰레기를 줍는다고 한다. 그리고 운동이 끝나면 벤치에 벌렁 누워 마치 기도문처럼, 종교가 없어도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빈다고 한다. “오늘 하루도 돈 생각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오늘 하루도 돈 생각 안 나게 해 주십시오!” 나도 따라해봤더니 내 동네 친구의 충고 그것 참 유용해서, 매일 천변을 걸을 때마다 나도 기도한다. 돈 생각 안 나게 해 주십시오. 세월호니 여타 여러 가지 사건들, 과거의 삼풍백화점 같은 것들도 돈 생각 안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것보다는 덜하지 않았을까. 천변을 걸으면서 순진한 기도인 줄 알면서도 기도를 올려 본다.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가 돈 생각 좀 덜 하는 곳이 되게 해 주십시오. 나 하나부터 돈 생각 좀 덜 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돈 생각은 덜 하고, 용기는 좀 더 많이. 우연히 마주친 수선집의 패기처럼.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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