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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자러 개구리들이 다 숨어버렸네. 개구리가 없으니 뱀도 ‘인투더와일드 호텔’로 고고. 나도 짱박혀 긴 겨울잠이나 자면 좋으련만 월드컵 기간에다 연거푸 마신 커피에 눈만 말똥말똥. 말동무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에 대고 사는 얘기를 나누곤 해.

김성동 샘의 단편소설 ‘눈오는 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가 잠꼬대를 하는 장면. 두루마기 동정에 인두질을 하던 엄마에게 아랫목에서 아이가 그런다. “아부지 오시먼 깨줘야 뎌. 새벽이라두 아부지 오시먼 꼭 깨줘야 뎌.” 밖에 개 짖는 소리가 나서 “누, 누구세유?” 하고 엄마가 내다보니 눈보라가 펄펄. “아부지는 거시기 새 시상을 맨들기 위해서 높은 산을 넘어갔구, 그래서 원젠가는 다시 높은 산을 넘어오실 거라구 그랬잤냔 말여….” 빨치산이 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 모자는 ‘아빠’ 이야길 나누면서 긴긴 겨울밤을 견딘다.

한 할아버지가 길을 걷다가 신기하게도 말하는 개구리를 만났대. “전 사실 개구리가 아니라 공주랍니다. 마법에 걸려 이렇게 개구리가 되고 말았지 뭐예요. 할아버지가 제게 키스를 해주시면 예쁜 공주로 변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다 개구리를 쑥 주워 담고 끝. 개구리가 항의를 했다. “왜 키스를 안 해주시는 거죠? 빨랑 사람으로 둔갑해야 된다니깐요.” 그러자 할아버지 왈, “이 나이에 젊고 예쁜 공주님을 뭐에 쓰게. 나는 말하는 개구리, 말동무가 더 좋아.” 헐랭, 이 개구리 공주님 정말 큰일 났네. 오늘 아침 첫눈이 내리길래 눈 온다며 두루 소식을 알렸더니, 물가는 높고 기온은 낮고, 앞으로 어찌 살까 우울증만 부채질한 꼴. 말동무 노릇도 고약한 시절이야.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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