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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

마라닉

opinionX 2022. 11. 17. 10:50



시골살이에 가장 많이 쓰는 몸은 장딴지와 콧구멍. 일단 잘 걷고 잘 뛰는 날쌘돌이여야 해. 머슴을 살더라도 장딴지 허벅지 근육이 짱이어야 한다. 콧구멍은 왜냐고? 친구 집에 맛난 거 해묵는지 킁킁댈 때 요긴함. 먹을 복이 있는 자는 콧구멍이 예민하게 발달한 종족이지. ‘마라닉’이라는 신종 낱말이 있다. 일본 사람 ‘야마니시 데쓰로’ 교수가 만든 말. ‘마라톤과 피크닉’의 준말이래. 주구장창 달리기만 잘해봐야 뭐해. 가다가 쉬기도 해야지. 등에 가벼운 배낭을 하나 메고 달리다가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일단 멈춤. 이제부턴 피크닉을 즐길 타임이야. 생수와 과일 몇 조각이면 충분하지. 마라톤을 달리다가 뜬금없이 삼겹살을 구워 먹겠는가.  

키가 크다고 달리기에서 유리한 건 아냐. 운동선수들의 대화. “너는 다리가 짧고 보폭이 좁아 조금만 달려도 피곤하고 힘에 부치겠어.” “사돈 남 말 하시네. 너는 다리가 길어 뇌가 명령을 내려도 발끝까지 전달되려면 한참 시간이 걸려. 손발이 뜻대로 안 움직여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겨울 채비로 부산을 떨었더니 맛문해서 홍시 하나 꿀꺽했다. 마라톤을 할 만큼 혈당을 보충한 거 같아. 한국 마라톤은 세계를 놀라게 만든 사건들을 갖고 있다. 손기정옹에 의해 꿈나무로 발탁된 함기용 선수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다. 두 분 하늘나라에서 금메달을 쥐고 만났겠지. 친구들은 먹감을 따먹으러 산으로 갈 때, 함 선수는 멀리 들길을 달리다가 물로 배를 채웠다지. 결국엔 자랑스러운 국기를 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도 달리긴 달리는데, 친구들과 주로 밤(?)을 달려. 야밤의 피크닉! 이른 편이나 송년 모임이 벌써 시작되었다. 우린 헤어지는 게 싫어 밤새도록 달리지. 하지만 그대 술에 취하지 말고, 사랑에 취하라. 마라닉 동무들을 만나러 섬나라에 왔는데, 마라톤보다는 피크닉이 즐거워.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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