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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시장이 심각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과잉생산이 심각한 제조업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출판시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출판의 ‘명가’로 군림하던 출판사일수록 직원과 신간 종수를 줄이며 겨우 버텨 나가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거에 ‘골목’을 지키며 대장노릇을 할 때는 잘 하면 호가호위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상상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른바 전 세계를 압도하는 창조력이 발휘된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입니다.

인건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은 증가하는데 책값은 올리기 어렵습니다. 경제는 조금이나마 성장한다고 하는데도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랬습니다. 모타니 고스케가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동아시아)에서 밝히는 논지는 간단합니다.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경기의 파도가 아니라 인구의 파도, 즉 생산가능인구=현역세대 수의 증감”이라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자의 급증’을 몰고 온 것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입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448만명의 단카이 세대가 은퇴했지만 그로 인한 빈자리를 대졸자 등 신규 인력이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1973년에 209만명이던 출생자 수는 2007년에 109만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저자는 “일본인의 노화에 따른 인구의 파도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면의 상승처럼, 장소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를 덮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 경제를 좀먹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따른 내수 축소”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되기 쉬운, “생산성을 올려라, 경제성장률을 올려라, 경기대책으로 공공공사를 늘려라, 인플레이션을 유도해라, 친환경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로 제조의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지켜라 등에는 실효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조금이라도 둔화시키기,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세대의 개인소득 총액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생산가능인구+고령자에 의한) 개인소비 총액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고령 부유층에서 젊은 세대로의 소득 이전 촉진, 여성 취업의 촉진과 여성 경영자의 증가, 외국인 관광객 및 단기 체류자의 증가 등을 내놓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젊은이들의 소득을 늘려주고 고령자들의 소비를 촉진하거나 ‘장롱예금’ 같은 고령자의 자산을 젊은 세대에게 서둘러 상속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축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게 되는 노인들의 재산을 상속하는 이의 평균연령이 67세라고 합니다. 상속받은 이가 다시 그 돈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는 일이 반복되니 그 돈의 일부라도 미리 세상에 풀어서 젊은 세대가 활용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여성의 일자리를 늘려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혹여 “국제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현역세대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헐값에 팔아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기업”은 자살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저자는 일본이 ‘동네의 보석가게’라고 말합니다. 이웃들에게 돈이 없으면 보석가게는 손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웃인 한국, 중국, 대만이 성장하면 할수록 비싼 제품이 잘 팔려서 일본은 돈을 벌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한국, 대만, 러시아,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대일본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대일본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천연자원의 수출국가도 아니고 첨단기술 제조업 입국(立國)도 아닙니다. 저자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는 일본 제품이 브랜드력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고급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첨단기술 제품이 아닙니다. 식품, 섬유, 가죽공예품, 가구와 같은 ‘경공업’ 제품이 일본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식품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물, 저는 딱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에비앙’조차 일부러 프랑스에서 운송해 팔고 있습니다. 와인도 일본의 가정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스위스의 제품입니다. 그것도 식품, 섬유, 가죽공예품, 가구와 같은 ‘경공업’ 제품에서 ‘브랜드력’으로 승리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80% 이상이 가업을 승계한 기업 경영자들은 오로지 직원들을 해고해서 인건비라도 줄이며 겨우 살아남으려 안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건비 절감을 통해 몇 년은 겨우 버틸 수 있겠지만 과연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시험을 잘 봐서 고위 관직에 진출한 ‘수험엘리트’들은 죽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경제를 운용하다가 그마저도 힘들어지니 이제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려고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그들의 하수인이나 되는 것처럼 거리에서 ‘파견노동’이 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라고 서명하며 국회를 압박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무엇보다 고민해야 할 것은 진정한 ‘창조경제’가 아닐까요. ‘브랜드력’은 ‘파견노동’으로는 절대 키울 수 없으니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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