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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 20만명이 지난 주말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타올랐다. 촛불 시민 사이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교 학생들도 있었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조장한 대통령에게 절망한 미래 세대까지 거리로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70대 노인들도 길 위에 섰다. 한 노인은 “박 대통령에게 줬던 한 표를 되돌려받으러 왔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야말로 지역과 나이, 이념을 넘어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이유는 하나다. 민주공화국의 복원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시스템의 일부일 뿐, 무한대의 권력을 위임받은 제왕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하고 관료조직을 이끌 권한을 일시적으로 부여받은 대표 ‘공복’인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위임받은 대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시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물을 권한이 있다. 지금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위임받은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하고 헌법적 권리에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해 ‘즉각 퇴진’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민주국가의 통치자로서 자격을 상실했다는 증거는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공적인 참모조직은 한낱 껍데기일 뿐 비선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온 것 하나만 갖고도 물러나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관료조직과 노동자의 피땀이 담긴 기업의 이익을 비선조직의 사적인 이득을 챙기는 데 동원했다. 엊그제는 재벌 총수들과 독대하면서 비선이 꾸린 재단에 돈을 내라고 한 데 이어 수백억원의 추가 모금까지 지시한 정황이 폭로되었다. 정경유착이라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국기문란 행위다. 그런데 이 모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고도 박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살리지 못했다. 외교도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신뢰를 잃었다.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은 막지 못하고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민주적 리더십은 고사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하기까지 한 박 대통령을 국가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시민의 외침은 너무나 정당하다.

대규모 촛불집회에도 시민들은 경찰과 충돌하지 않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 시민들은 절제된, 그러나 확고한 태도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바뀔 민심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 협의해 국정을 이끌어가라는 민의를 무시한 채 연이틀 동안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기습적으로 지명했다. 그래 놓고 야당과 협력하겠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러니 박 대통령이 새롭게 내놓은 제의가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엊그제 청와대는 내정과 외치를 분리해 박 대통령이 외치만 맡는다고 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권력 집착은 스스로 물러날 수 없다는 김병준 총리 지명자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말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실제로는 시간을 끌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박 대통령을 평범한 시민들조차 믿지 못하겠다며 저항에 나선 것이 촛불집회다.

박 대통령 통치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때도 여소야대의 민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독주했다.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지금 멈춰 선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은 박 대통령이 하루빨리 물러나는 것뿐이다. 여당 의원도 “제2의 4·19가 오는데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95%의 시민들이 신뢰를 접은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4개월을 계속 통치하는 것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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