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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호수에 가보자 해서 산책하다 웰시코기 한 마리가 웃고 따라옴. 영국 웨일스산 귀염둥이 강아지 있잖은가. 오요요 해서 불러보니 다가와 안김. 고놈 참 사람 좋아하네. 내게 개냄새가 나서 그런가. 근데 주인이 안 보여. 데리고 그 자리서 쫌 놀았는데, 헐레벌떡 한 아가씨가 달려오니 개가 돌변하여 나를 향해 으르렁거림. 연기도 잘하데. 주인과 재회해서 천만다행. 주인 말고도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덩만. 우리집 개들도 빨간 헬맷을 쓴 집배원이나 중화요리 배달부 아저씨 빼고는 다 좋아하는 거 같아. 동물만 그런 게 아니고 사람도 사회성이 좋은 이들이 있다. 누구라도 잘 어울려. 타고난 성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반려견은 어려서부터 사회성 교육을 잘해야 한다. 개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수십년 애견인에 나름 애견훈련사.

인싸와 아싸는 이제 누구나 아는 말. ‘인사이더’를 세게 발음해서 인싸.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을 인싸라 해. 반면에 아싸는 ‘아웃사이더’를 말하는데, 모임이나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보통 나홀로 집에~. 인싸 성향의 집안에 아싸 며느리가 들어오거나, 아싸 성향의 집안에 인싸 성향의 사위가 들어오면 충돌이 생김. 둘은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럿일 때는 ‘붕괴’한다. 

엊그제는 인싸들이 모여 여기선 ‘풋지’라 부르는, 열무에 밥을 으깨 갈아설랑 얼큰한 풋고추며 대충 양념을 만들어 넣고, 달달하게 사이다도 살짝 부은 김치를 담아 나누는 자리. 막걸리는 얼마나 달큼하던지. 또 하루는 몽골에서 친구가 사 온 보드카에 도서관 확장 기념으로다가 일잔, 핼러윈이라고 청년들이 초대하길래 인싸로 한바탕. 급기야는 강의를 마치고 다른 교수님과 또 목을 뒤로 꺾었다. 그러다 이젠 ‘아싸’가 되고파서 며칠 세상을 끊고 또 살아봤는데, 아싸보다 인싸가 행복하덩만. 사람이나 개나 어울려 지낼 때 행복감과 안도감이 생긴대. 천주교 수사님들을 종종 뵙는데 “다 사람 멀미 나서 수도원에 가는데, 가보면 또 거기도 사람입죠.” 동안거, 하안거를 지키며 사람을 암만 피하고 볼래도 절집 풍경 또한 마찬가지. 어차피 사람이랑 살 바엔 ‘웃고 견디며’ 인싸로 살아야겠다 싶어.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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