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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중의 복은 오래 사는 복이라덩만. 모르겠어. 얼마나 살아야 오래 사는 건지는. 누군 자유 자유 해쌌던데, 제 명에 못 살고 ‘일찍 죽을 자유’ 말고는 없는 거 같은 요즘 세상이야. 한 유랑자 객승이 있었는데, 제자에게 다음 두 가지 가르침을 명심하라 했대. “1. 절대 길에서 죽지 말 것 2. 길에서 죽지 말라는 1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말 것.” 그렇다고 명줄이 하늘에 달렸는데, 제 뜻대로 될 것이냐만. 목사가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이 뭐냐 물었어. 사형수는 “죽을 때 외로우니 제 손을 꽉 잡아주세요”. 순진한 목사가 “그 정도 소원이야 당연히 들어줄 수 있죠”. 그리곤 둘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얘기. 이승이나 저승이나 혼자는 외로워. 

저번날 동네 어르신들이랑 같이 생선토막 놓고 조촐한 점심. 대화가 오가는데, 이웃 동네에 100세 넘은 할아버지가 계신단다. 평일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대. “요새 힘든 거이 뭐십니까요?” “아따 시험 좀 안 봤으면 좋겄소. 이 나이에 수학 시험을 만날 본단 말이요.” 아마도 치매 염려에 보호사들이 문제를 풀게 하는 모양. 10살도 아니고 100살까지 먹어도 수학 시험을 봐야 한다니 힘들긴 하시겠네. “요새 그럼 좋은 거는 뭐십니까요?” 영감님이 순간 수줍어하시더란다. 캐물으니 옆자리 할머니를 가리키며, “좋아허는 사람이 생겨부렀어~”. 밥알을 삼키다가 뿜을 뻔했는데, 부러워서 울 뻔도 했다. 이거 거짓말이 아닌 게 이 얘길 들려주신 분은 바로 군수님. 목사 말에 신용이 없는 세상이니 공직자를 팔아야 쓰겠군. 

날이 차가워 난롯불을 밤마다 지피는데, 장작이 다 타들고 남은 깜부기불이 꼼지락거리면 장작개비를 골라 던진다. 불을 오래도록 살리려면 책임지고 애를 써야 해. 나무토막도 둘이 타고 셋이 타야 불이 붙지 혼자로는 택도 없다. 장수 복은 모르겠는데 인복은 있나벼~. 과일이며 포도주며 포장된 전복국도 생겨설랑 당분간 굶어 죽지는 않을 듯. 당신도 100세 넘어서까지 사랑하고 살기를 바라. 먼저 죽은 이들을 위로하며 촛불기도를 바치는 밤이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지키지 못한 목숨들엔 항상 죄스럽다.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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