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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갖가지 추문을 단박에 잠재운 강력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이 사건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간 박근혜 정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과 맞물려있다. ‘문화융성’이란 모토 아래 추진된 여러 행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 선임이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그 무리들에 의해 온갖 비리가 저질러졌고 블랙리스트도 작성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란다. 2014년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을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내려 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옥죄고 탄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방증하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정부는 돈줄을 풀거나 조이는 방식으로 문화계를 길들여왔다.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이들을 모조리 좌파로, 빨갱이로 몰아 뽑아내고는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선거캠프와 새누리당 출신 친정부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내리꽂았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갖은 비리와 전횡을 일삼아 왔음도 익히 접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동일한 욕망으로 공동체를 이룬 무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 자본을 확장하고 대를 이어 보존하고자 하는 탐욕으로만 점철된 강고한 카르텔이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차은택의 스승이란 이유로 장관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김형태 전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였는데 최근 성추행과 인사전횡 등으로 해임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통령 관심사항인 전시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진즉에 파리 목숨이 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를 관리하는 간부직엔 대선캠프에서 활약한 기업인이 추천한 인사가 낙하산 임용됐다는 설이 오래전부터 파다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국내 미술상황에 대해 거의 무지할 수밖에 없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 관장 뒤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로 인해 서울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전시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덕 전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 응모해서 선별된 후보자를 선임하지 않고 미루다가 끝내 무산시키고 뜬금없이 낯선 외국인을 관장으로 선임한 배경을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여타 미술관의 관장이나 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윗선과 연결된 문체부 관리들이 주축이 돼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진보나 좌파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을 적극 소탕하고 내치는 한편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조직적으로 앉혀왔다고 본다.

그렇게 기관의 장이 된 이들이 각종 행사에 나와서 문화융성에 대해, 문화예술의 창조성에 대해 온갖 수사로 지껄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공무원들은 그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주도해나갔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특정 예술인들을 속아내고 지원금을 차단하고, 직장에서 내쫓거나 검열을 일삼는가 하면 대통령 측근 인사를 심어주는 일을 충실히 집행한 대가로 승진하거나 해외 문화원 원장으로 영전돼 나갔다. 이게 우리나라 문화현실의 꼬락서니다. 이러한 문체부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괴벨스나 매카시, 박정희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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