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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과 관광을 포함해서 소위 문화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몇몇 사람들의 작당으로 좌우된 정황들이 드러나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과 맞물려 예술계 안팎에서도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건설하거나 회복하는 일과 같은 맥락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국정농단의 주요 대상으로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국정철학의 부재와 정책기조의 결핍 속에서 완벽하게 유린당했다. 차관에서부터 실국장, 과장에 이르기까지 행정관료 조직의 골간이 흔들린 상태에서 무방비로 당했다. 대통령의 거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행정의 오작동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의 일단이 제주도와 서울 성북구에 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중심과 변방으로서의 서울과 제주를 집약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일 뿐이다. ‘사람도 말도 제주로.’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사회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제주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가운데 가장 뜨거운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제주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녀오고 싶다’에서 ‘살아보고 싶다’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의 정책은 관광 일방주의에서 탈피해 관광과 주거의 두 축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 다녀가는 여행지에서 머물러 살고 싶은 거주지로 확장하고 있는 제주도는 도민의 문화향유권 신장을 위해 ‘문화예술의 섬’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원희룡 도정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으면서 3%에 근접하는 문화예산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주도의 문화정치는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정책의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배치와 더불어 민간의 공론을 행정에 반영하는 민관협치에 의해 작동한다. 그것은 문화국과 문화재단, 박물관, 미술관 등의 행정조직이 정책수립과 실행과정에서 제주도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대리보충 역할과 만나는 구조다. 도지사와 함께 김수열 시인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예술위는 도정 전반의 문화정책을 다루는데, 단기 현안들은 물론 중장기 현안에 대해서도 심의 의결하는 기능을 가짐으로써 ‘제주문화정책의 주류화’를 위해 민간과 관료의 협치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는 스물다섯개의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민관협치의 관점으로 마을 만들기와 협동조합, 청년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지방자치구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생활정치로 주목받고 있다. 성북문화재단은 정릉, 성북동, 미아리고개 등의 거점 공간에 예술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면서, 인문학, 역사문화, 생활문화의 3대 축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재단의 김종휘 대표는 홍대 앞 인디레이블 실험과 노리단 등을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 성북구 전반의 문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성북구를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문체부는 탐욕스러운 통치자의 그물망에 포획된 후 스스로 국정농단의 한가운데 들어서 버렸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행정조직으로 낙인찍혀 이제는 문체부 해체 주장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문체부는 처절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강도 높은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민관협치 구조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행정조직과 협의하여 민간의 소통능력을 배가하는 자문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예술위를 되돌려놔야 한다. 그것이 비선 실세의 음험한 농단으로부터 벗어나 행정과 민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집단지성의 묘미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서울에는 성북이 있고, 대한민국에는 제주가 있다. 제주도와 성북구의 문화정치는 행정과 민간 간의 소통 가능성을 넓히는 협치의 문화정치다. 민간의 참여와 협업을 중요시하는 제주도의 예술위는 무늬만 위원회가 아니다. 문화를 도정 전면에 내세운 만큼 문화 관련 정책과제의 발굴과 토론, 자문을 맡는 실질적인 정책자문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의 문화정치는 마을과 청년 속에서 공동체예술과 행동하는 예술을 길러내는 사회예술로 이어진다. 혼돈의 와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 문화정책 행정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행정의 오작동을 대리보충할 수 있는 기제로 민관협치에 주목해볼 일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 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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