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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일원에서 사단법인 숲길(이사장 도법)이 주최하는 행사 ‘지리산프로젝트 2016: 우주여자’(10·22~11·20, 전북 남원 실상사 및 경남 하동 일대)가 열리고 있다.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동참해온 이 프로젝트는 예술과 학술의 소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지리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예술적 감성과 과학적 진리의 수준에서 접목하는 우주적 관점의 융합프로젝트다. 자연과 공동체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지리산둘레길 일원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답사와 토론, 캠핑, 퍼포먼스, 지리산 종주, 공연, 학술, 전시 프로그램을 열었다. 지리산 종주와 둘레길 걷기, 강연과 토론 등으로 배움의 시간을 가졌고, 기획전시와 학술심포지엄으로 그 뜻을 나눈다.

2014년 ‘우주예술집’, 2015년 ‘우주산책’에 이은 세 번째 지리산프로젝트의 주제는 ‘우주여자’다. 이번 행사는 남성-자본 중심의 현대사회가 인간과 자연에 가하는 모든 종류의 지배, 억압과 착취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동시에 인간해방의 차원에서 자연의 섭리와 생태 질서를 돌아보는 자리다. 남원 실상사와 하동 둘레길 일원에서의 전시행사와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여성담론의 쟁점들을 살펴보는 학술심포지엄 ‘다시, 여성주의와 예술’(경남도립미술관, 11·4)이 열린다. 여성주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현실 운용 원리로서의 여성혐오-남성공포에서 통감과 분노의 정치학으로’(윤지영),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운동’(정필주), ‘지리산의 여성주의 예술활동’(이유진) 등의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한다.

지리산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그것은 생명과 포용, 자비, 해방을 뜻한다. 그러나 지리산에 덧붙는 ‘어머니’는 여성에게 희생과 순종을 강요한다는 면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 지리산’ 담론에 대한 예찬 수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차별과 억압의 기제를 걷어내고, 자유와 평화, 공존, 공유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를 모색할 일이다.

특히 지리산에 사는 여성들의 생활 속 여성주의 운동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메갈 논쟁’이라는 혐오의 정치학이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여성주의 의제들이 미해결 상태로 방치돼 있다는 데 주목하고 메갈 논쟁의 경과와 함의를 돌아봐야 한다.

이렇듯 지리산의 가치를 우주적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하는 지리산프로젝트가 현 시국과 맞물려 묘하게 읽히고 있다. 정권의 스캔들과 얽혀들어 ‘우주’와 ‘여자’라는 단어가 오해를 받고 있다. 억울하고 못마땅한 일이다. ‘우주’를 그렇게 쉽사리 오염된 단어로 치부하기에는, 인류가 갈망해온 천문우주에 관한 경이로운 세계가 너무나도 넓고 크다. 게다가 지금껏 남자들이 저질러온 죄악이 훨씬 더 극심한데도, ‘여자’라는 단어를 조롱과 멸시의 뜻을 담아 사용하는 데에는 공감할 수 없다.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가 우주를 언급했다고 해서 우주라는 개념을 폄하할 이유가 없고, ‘여자(들)’ 운운하며 양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더욱 한심한 일은 ‘무당정치’라는 말을 동원해, 최근의 국정혼란 상황에 대한 비판을 샤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돌리는 반문화적 태도다. 민속학 전공자인 주강현 박사는 최근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다음과 같이 무당정치 담론을 언급했다. “무당정치라는 말보다 그냥 신정정치라 명명하고 쓰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굳이 복잡하게 말한다면 기독교 영생에 기반을 둔 무속기독교융합과 삼류정치권력의 권력독점 야망이 결합되고, 자본의 부패와 관료 전문가 사회의 침묵과 동조가 빚어낸 퇴행적 신정정치다.” 우주적 존재론과 여성주의, 샤머니즘에 관한 재인식이 없는 한 우리는 퇴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에 자리 잡은 정신문화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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