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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종목의 일본 선수들이 먹었던 딸기가 국내산 딸기로 알려지면서, 한국 딸기의 원류가 일본 딸기라는 논쟁이 잠시 붙었다. ‘설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딸기 육종 기술은 매우 뛰어나다. 작년 농촌진흥청에서 새 품종의 딸기 이름을 공모했는데 1등의 영예는 품종 이름으로 선정되는 것이고(가문의 영광!), 2·3등은 온누리상품권을 주는, 소박하지만 즐거운 이벤트였다.
나는 ‘향’자 돌림을 써서 ‘춘향이’라는 이름을 밀었고, 딸아이는 ‘국통에 빠진 딸기’를 꼽았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사랑에 빠진 딸기’의 표절의혹이 있지만 학교 급식에서 딸기를 집다가 실수로 가끔 국통에 빠질 때가 있어서란다. 비록 식구들 모두 떨어졌어도 한나절 즐거웠다. 새 품종 딸기 이름은 ‘아리향’이다.
먹거리 중에서도 과일은 위치가 독특하다. 쌀이나 고기처럼 필수 식량이라 할 수는 없지만, 비타민의 공급처인 동시에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 ‘새콤달콤’, ‘사각사각’, ‘말랑말랑’, 이런 예쁜 표현이 가능한 식료가 과일이다. 맛과 향기는 온 감각을 자극하고 특히 계절감을 느끼게 해주는 데에는 과일만 한 것이 없다. 하나 집안 형편에 따라서 챙겨서 먹을 수도 있고 거의 먹지 않는 것도 과일이다.
실제로 과일은 식생활의 소득 지표이기도 하다. 2017년 통계로 보면 소득이 월평균 500만원 이상인 고소득계층이 가구당 월 200만원 미만인 저소득계층의 2.7배 수준이다. 저소득층의 가구당 과일류 소비지출액은 월평균 2만820원인 데 비해 고소득층의 가구당 과일류 소비지출액은 월 5만5210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빤한 살림살이에 가장 먼저 채워야 하는 것은 땟거리인 쌀과 김치가 우선일 테니 과일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소득은 점점 줄어들고, 수입 개방으로 과수 농가도 힘들다.학생들은 과일을 골고루 챙겨 먹을 시간도, 형편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 해결책으로 과일 급식이 떠올랐다. 농가도 살리고 학생들의 식생활 개선에도 나선다는 취지다.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과일 급식 확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보편적 급식의 선진지라고 할 수 있는 핀란드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선 채소와 과일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고 그 효과는 이미 증명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일 한 조각 먹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에 매달려 짓는 농사이다 보니 일정한 당도와 고른 크기로 나오지 않아 품위에 맞는 ‘똑똑한 놈’만 골라내기가 힘들다. 계절마다 골고루 먹인다는 것은 그만큼 과일을 씻고 손질할 인력이 더 필요하단 뜻이다. 학교 현장에서 가장 선호되는 과일이 귤이나 방울토마토인 이유가 있다. 씻기만 하면 학생들도 알아서 먹을 수 있어서이다.
배나 사과 같은 과일은 씻어서 껍질을 까놓으면 갈변이 되고 만다. 그러면 또 아이들은 안 먹으려 든다. 껍질째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껍질이 있으면 그만큼 버려지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맛도 좋고 몸에 좋은 국내산 키위 한 번 먹이자면 안 그래도 부족한 조리 인력 중에서 빼내서 키위 손질에만 매달려야 하니 주찬(밥)부, 부찬(반찬)부의 노동 강도가 가중된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현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저 말놀이다.
방법은 오로지 급식 현장의 인력 확충과 노동환경 개선뿐이다. 그래야 농민도 웃고 아이들도 웃는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딸아이는 삼시 세끼를 학교에서 먹는다. 국통에 빠진 딸기라도 잘 챙겨 먹고 있기를.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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