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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과학기술부의 연두업무보고에는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업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민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사이언스 코리아 국민운동’의 일부로 제시된, 반쪽 분량의 우주인 배출 사업 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은 곧 2006년 대국민 공모를 통한 우주인 선발로 이어졌다. 미래의 우주인을 꿈꾸는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지원할 수 있었지만, 아무나 우주인이 될 수는 없었다. “키 150~190㎝, 몸무게 50~95㎏, 발 크기 29.5㎝ 이하”의 신체조건을 만족해야 했고, 3.5㎞ 단축마라톤, 서류심사, 필기시험, 위기대처능력, 우주적성검사, 의학검사 등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여러 조건을 만족시킨 이상적인 한국 우주인은 “지·덕·체를 갖춘 대한민국 국민으로,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온화하고 건강한 우주인”으로 묘사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8년 우주로 한국인을 보내려는 계획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열흘의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주인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했다. 우주인은 4년간 200회가 넘는 강연을 다니며 우주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과학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애썼다. 그러나 후속 사업은 계획되지 않았고, 우주에서 수행한 실험도 이어가기 어려웠다. 2016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간한 한 보고서는 우주인 배출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사업의 과학적 목적이 불분명했다는 점을 들었다. “과학적 목적 확보를 위한 학계와의 적극적인 공감대 형성 과정 없이 국가적 자부심 고취, 성과 창출 등의 목적 달성을 위한 단기 성과에 집중한 사업”은 결국 관련 분야 연구 중단과 사업 추진 경험의 낭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주인 배출 사업에 ‘과학적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주인 ‘배출’ 사업에 우주인의 미래까지 계획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한국인을 우주로 보내려는 계획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최근 우주 개발 계획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것보다 우주 기술 개발과 우주 산업 육성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발표된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발사체, 인공위성,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과 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달 탐사에 나서며, 우주 산업화를 통해 우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지만, 또 다른 우주인을 뽑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 한국에서 우주인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우주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우주 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그것을 위해 훈련을 받고, 그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일 것이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하고, 휴가를 갈 것이다. 대국민 공모가 아니라, 채용 공고에 따라 지원자들의 능력과 경력을 따져 우주인이 선발될 것이다. 한 사회에서 우주인이라는 직업이 탄생하려면 단순히 우주인을 ‘배출’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 필요할 것이다. 우주인을 고용하고, 직무 훈련을 담당할 기관과 더불어 우주 비행이라는 일거리를 제공할 유인 우주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우주 탐사 정책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우주인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미래에는 ‘여성’ 우주인의 성과가 어떻게 평가받을까? 전 세계적으로 여성 우주인은 60명에 달한다. 여성 우주인들은 그러나 종종 남성들에 비해 적은 비행 기회가 주어지거나, 고질적인 성차별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한 예로 여성 우주인은 우주선에 불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2008년 4월19일, 이소연 박사가 탄 소유스 TMA-11호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 모듈이 비정상 분리되는 사고를 겪었다. 아나톨리 페르미노프 당시 러시아 우주청장은 우주선에 남자보다 여자가 많으면 불운한 사고가 난다며, 향후에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를 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이때 소유스에 탄 세 명의 귀환자 중 두 명이 여성이었고,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경우는 역사상 처음이었다.

특히 한국 최초 우주인이 이룩한 성과는 하필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예비 우주인과 선발 우주인의 신분이 바뀐 것이 특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예비 우주인이었던 여성의 성과는 선발 우주인이었던 남성의 것을 어쩌다가 가져간 것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남성 우주인 후보는 나라를 위해 우주 기술 정보를 더 얻으려고 한 영웅으로 여겼지만, 열흘간의 비행 기간 동안 분초를 쪼개 가며 열여덟 가지의 실험을 수행하고 온 여성 우주인은 그저 ‘관광’하고 온 것으로 여겼다. 두 사람이 모두 각자의 미래를 고민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 과학과 관계없는 공부를 하고, 남성은 돌아와 벤처 사업을, 여성은 미국에 남아 강연과 강의를 하는 삶을 선택했을 때, 국가의 투자를 저버린 ‘먹튀’라고 사람들이 비난한 것은 여성이었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언론이 기여한 역할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은 우주인 배출 사업이 생생하게 드러내는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 정책, 나아가 과학기술 정책의 구조적 측면에 주목하기보다는 우주인의 말과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미래에 한국 우주인이 탄생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 우주인이 여성이라면, 우리는 그의 성과를 편견 없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2018년 4월8일은 한국인 최초 우주인 탄생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과학잡지 ‘에피’에 수록된 우주인 이소연 박사의 인터뷰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표현을 기사의 제목으로 삼거나 “과거 정부의 우주인 프로그램을 정면으로 비판”(경향신문)했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내었다. 바삐 말을 실어 나르는 기사들 가운데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려는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진짜 ‘먹튀’는 260억원짜리 사업에서 의미 있는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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