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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꼽는 올해의 10대 이슈 중에 ‘미세먼지’가 있지 않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한 사건이 터지는 나라에 살아 웬만한 것엔 무감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는 건 미세먼지 농도다. 미세먼지야말로 우리 삶의 지배자다. 하지만 대책은 보건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것 정도다. 그런데 이 권고를 염장 지르는 일로 받아들일 이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바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인 말이다. 논밭이 직장인 농민들도 대표적인 옥외 노동자다. 미세먼지 피해를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농민들은 법률상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산업재해법령에 농어업인을 추가해야 한다는 법안도 최근에야 발의됐다. 

농촌은 미세먼지의 주요 피해 지역이다. 일단 밖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건강 문제가 있다. 농민들이 고령이기도 해서 도시 기준으로 보면 노약자이지만 농업 노동을 감당한다. 마스크를 쓰라 하지만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가 번거롭고 결정적으로 마스크 값도 부담이다. 그래도 조심하시라 했더니 “어차피 죽을 날 받아놓은 인생” “농민은 빚으로 죽으나 먼지로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서늘한 대답이 돌아온다. 가축들도 미세먼지를 그대로 마셔야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가축들 눈에 눈곱이 끼고 콧물이 흐른다. 작물들은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아 품질이 떨어지고 수확량이 줄어든다.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활동이 줄어들면 고기 소비도 줄고, 그만큼 상추를 비롯한 쌈채 소비도 부진하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더 얇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미세먼지의 위력이 도시와 농촌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태세다.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농촌 자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오염원도 적지 않다. 축산분뇨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가스나 노후 농기계 매연, 영농 폐부산물 소각도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제대로 쓰레기 수거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소각을 하는 일이 많다. 또 워낙 고가인 농기계는 아무리 낡아도 손쉽게 교체할 수 없다. 게다가 농기계는 휘발유가 아닌 경유로 움직이다 보니 영농철에 농기계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가 도시 못지않다. 미세먼지 주요 대책으로 내세우는 대중교통 이용도 대중교통체계가 열악한 농촌에선 별 소용이 없다. 자가용 없이는 생활이 곤란한 곳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미세먼지를 마시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는 곳이 지금의 농촌이다. 

농촌 미세먼지 대책도 이제야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정부는 우선 영농 폐기물의 소각이라도 막기 위해 6월 한 달간 영농 폐기물을 직접 수거하겠다고 밝혔다. 농기계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을 지원하고, 노후 농기계의 단계적 폐기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 축산분뇨 처리시설의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결심’도 밝혔으나 이는 축산업의 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에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언가라도 해보는 것이 낫지만 농어촌 지역 81곳에는 미세먼지 측정소조차 없어 먼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로 상황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소비자들의 90% 정도는 농촌의 미세먼지가 걱정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혹시 미세먼지가 농작물에 흡수되는 건 아닌지, 노지 재배 채소와 과일은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몸속의 미세먼지 배출에는 어떤 농산물이 좋은지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세상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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