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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초상이 났다. 전쟁도 없고 큰 돌림병 돌지 않아도 여전히 줄초상을 겪는다. 

5월1일 ‘영암 미니버스 교통사고’로 운전사를 포함해 여덟 분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일곱 분이 크게 다쳤다. 나이가 가장 적은 분이 58세이고 대부분 70~80대인 여성농민이었다. 최고령은 83세의 어르신이고, 유일한 남성 사망자인 운전자도 72세의 노인이다. 영암 교통사고로 알려져 있지만 사망자 중 영암군 시종면 주민은 3명이고, 나머지는 나주시 반남면의 주민들이다. 가문의 자부심이 높은 ‘반남 박씨’의 시조가 터를 잡았던 그곳이다. 나주 반남면은 영암군과 이웃붙이여서 품을 사고파는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다. 반남면은 165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단연 고령화 비율도 높다. 서로 얼굴과 형편은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했으니 지역사회가 받았을 충격이 클 것이다. 동년배의 노인들이 꽃상여까진 아니어도 태를 묻은 곳에다 몸을 누이는 순한 임종을 매일 기도하고 살았을 텐데 이 깊은 슬픔을 어쩌랴.

지금 영암에서는 총각무 수확이 한창이다. 영암군이 지역의 특산물로 자랑하는 농산물인 ‘영암 알타리무(총각무)’의 수확철이 4~5월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다 참사가 일어났다. 농어촌에서 현금을 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을 파는 일뿐이다. 미풍양속이라 배웠던 ‘품앗이’ 문화가 사라진 지도 오래고, 한 동리에서도 현금으로 품값을 주고받는다. 새참이나 들밥은 배달음식을 먹곤 한다. 푸성귀가 지천이긴 해도 화폐 없이 삶이 굴러가지 않는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마찬가지다. 농사도 돈으로 짓는다. 농사의 매 과정마다 기계 부리는 공임, 씨앗, 농약 값이 나가니 현금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이제 모판 낼 힘도 없어서 모를 사와 모내기를 한다. 기초연금이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그 돈으로 생활이 꾸려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농산물 값이 너무 싸서 그렇다. 그래서 여든이 넘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계 차원이다.

텃밭을 일궈 먹을거리를 조달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름의 절박한 이유들이 있다. 오래전 혼자 되신 숙모도 자식들이 도시로 오라 해도 할 줄 아는 노동이 농사일 뿐인데 도시로 가면 폐지나 줍지 않겠냐며 남으셨다. 하긴 호기롭게 어머니를 불러올리려는 사촌들의 형편도 빤하다. 시골 고등학교 나와 도시에서 하는 일들의 거개가 그렇다. 농업 노동도 엄연히 임금노동이다. 하지만 ‘노동’이란 개념이 약해서 법적 제도가 취약하다. 천만다행으로 이번 사고 버스는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동차도 수두룩하다. 농장주가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해 두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농촌에서의 보험이란 작물에 대한 재해보상보험이나 의료보험 정도일 뿐 사람에 대한 안전장치가 아니다. 농촌에서는 다치면 병원도 멀어서 장애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더 잦다. 교통수단도 미비해 일상적인 치료를 받는 일도 벅차다. 한꺼번에 약을 지어와 중간 점검도 없이 장복을 한다. 요즘 총각무 경락가가 5㎏에 6000원이다. 할머니들이 받았던 일당 7만5000원. 여기에서 차비와 소개비 떼고 새벽부터 6만원을 벌었다. 그녀들이 마지막에 쥔 것은 돈다발이 아니라 총각무다발이었다. 올해는 총각김치 먹다 보면 눈물 나겠구나, 아니 꼭 울어야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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