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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8년 만에 혼인신고를 결심했다. 남편이 ‘세대주’가 되고 ‘호주’가 되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며 호기롭게 혼인신고를 거부했던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가 마주하게 될 편견과 차별이 두려워서였다. 유치원에 입학하자 유치원에서는 주민등록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가정의달을 맞이해 ‘아빠데이’를 한다며 신청서를 보내왔다. 대수롭지 않게 이루어지는 가족관계 서류 제출 요구와 가족동반행사가 미혼모와 한부모가족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가늠하긴 어렵지 않다.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후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한부모가족의날’제정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모니터링한 결과 민간기업의 17.1%, 공공기관의 9.5%가 입사지원서에 혼인 관련 사항을 기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와 직장에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흔한 일상이다. 문제는 한부모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 응답자의 90.5%가 혼인 외 가족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도 91.4%가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모나 이혼 가정임을 드러낼 수 있는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과다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태를 금지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조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미디어 뉴스를 통해 우리는 매일같이 미혼모와 한부모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증평 모녀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인 미담으로 보도되는 ‘베이비박스’도 ‘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와 혼인 외 가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결과이다. 입양 보내는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학교와 사회에서 교육하고,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할 기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단기간에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대책은 정부가 획기적인 지원 정책을 내놓고 이를 실행하는 것을 온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미혼모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 연극 행사에 김정숙 여사가 참여해 격려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며 개인적으로 환호했다. 대통령 부인이 미혼모와 함께했다는 뉴스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한부모의 당당한 삶을 응원”한다면서 임신·출산, 자녀 양육, 학업·취업·주거 등 자립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이 꼭 실효성 있게 집행되기를 기대한다. 변화된 법과 제도가 있어도 실질적인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사문화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한부모가족 대책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의문이 들었다. 미혼모나 혼인 외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감안한 결과 상대적으로 사회적 시선이 온정적인 ‘청소년’에게 집중한 것은 아닐지 추측해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하기엔 씁쓸하다. 2015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서 수집한 표본상 한부모가족의 평균연령은 43.1세로, 40대 61.2%, 30대 이하가 25.3%, 50대 이상이 13.5%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부모가족 대부분이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소년’ 한부모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여성가족부의 대책이 아쉽다. 제1회 법정 한부모의날(10일)을 보내면서 자문해보자.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포함한 한부모가족에게 낙태, 베이비박스에 유기, 입양, 양육 중 무엇을 권하고 있는지.

<소라미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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