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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총선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이끄는 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압승했다. 1957년 독립 후 줄곧 집권해온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BN)이 처음으로 여당 자리를 내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세계의 눈은 60년 만의 여야 교체보다 ‘개발독재자’ 마하티르의 총리직 복귀에 더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15년 만에 권좌로 돌아오는 마하티르의 나이가 93세다. 최고령 국가정상인 튀니지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보다 한 살 더 많다. 그의 고령을 집중 부각한 여당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몇 시간씩의 선거 유세 강행군을 거뜬히 해내 노익장을 과시했다.

마하티르 복귀의 결정적 비결은 은원 관계를 뛰어넘은 합종연횡이다. 당초 마하티르는 이번에 실각한 나집 라작 총리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마하티르는 나집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퇴진 운동을 벌였고, 이 때문에 여당에서 쫓겨났다. 이에 마하티르는 과거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였다가 동성애 혐의로 투옥 중인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와 손을 잡았다. 안와르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마하티르에 반기를 들다 실각했다. 20년간 숙적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정권교체를 위해 극적으로 화해한 것이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노정객 마하티르를 다시 불러낸 것은 나집 총리 정권의 부패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의 반부패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는 게 그의 최우선 과제다. 그 외 ‘아시아적 가치’를 외치며 보여온 반미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견지할지, 또 말레이시아 경제권을 장악한 중국계와 부상한 중국을 어떻게 대할지도 관심사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고령인 탓에 벌써부터 후임이 거론된다. 다음달 석방되는 안와르가 복권을 거쳐 적절한 시점에 총리직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하면서 ‘근대화를 이끈 국부’와 개발독재자란 엇갈린 평가를 받은 마하티르. 변화한 정치 환경에서 마하티르가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펼칠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판 박정희’의 귀환은 한국인들에게도 간접 경험이 될 것 같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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