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는 닭 전공이지, 대가축 전공이 아니어서요.”

조류인플루엔자 난리 통에 양계산업의 기업 쏠림 현상과 농식품부와 방역당국의 직무 유기에 소견을 보탤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종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구제역’ 사태가 벌어지자 모 언론 매체의 연락을 받고 거절 아닌 거절의 궁색한 대답이 저랬다. 닭 전공이란 말에도 어폐가 있다. 사회학을 공부한 내가 떠드는 말은 인터넷 검색 수준이다. 그저 농촌 농민 이야기가 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마음만 앞서 천지 분간 못하고 떠들어댔을 뿐, 부끄러움과 오류는 오로지 내 몫이다.

다만 매체 담당자에게 ‘물가안정’을 내세워 수출에는 도가 튼 정부가 돼지, 쇠고기 수입 카드를 재빨리 내어놓지 않겠느냐는 말은 보탰다. 산란계 닭이 죽어나가고 계란 값이 오르자 대책이랍시고 계란수입카드를 제일 먼저 꺼냈으니 말이다. 신선란 수입 경험이 없어 한·미 간 팀스피릿 훈련하듯 비행기로 흰 계란을 실어 온 마당에 소, 돼지는 얼마나 쉬운가. 먹어본 고기에 수입해 본 고기다. 거기에 구제역 발생 원인을 농민들에게 밀어내기할 것이란 삼척동자의 전망까지 덧댔다. 아니나 다를까. 구제역 책임을 농가에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내가 작두를 탄 것인지, 아니면 익숙하고도 빤한 길을 정부가 걸어온 것인지.

한 사건에는 여러 당사자가 있지만 가축전염병 재앙의 우선 당사자는 축산 농민이다. 어제까지 키우던 가축을 축사 뒤에 묻고, 동물 사체 섞는 냄새로 그 고통을 매일 직면하는 당사자 말이다. 하나 상제의 곡소리보다 객들의 곡소리가 담을 넘는다. 살처분 보상금이 있지 않으냐거나 땅도 좁은 이 나라에 축산이 웬 말이냐며 수입해서 먹자는 말의 폭격. ‘구제역 테마주’를 내세운 주식 전망까지 횡행하니 이런 객쩍은 말의 폭력에 상제의 곡소리는 더 높아져간다. 할 말도 많고 억울함도 크지만 일단 방역이 절실하니 차제에 잘잘못을 따져 보기로 축산 농가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돼지 멱따는 소리나 닭 모가지 비트는 소리를 들은 마지막 세대가 나일 것이다. 농촌에서는 애경사가 있으면 으레 돼지를 잡았다. 마을 큰어른들이 돼지를 잡으면 아주머니들은 양동이에 선지피를 받아 순대를 만들거나 국을 끓였다. 키운다는 것은 죽이는 일과 지척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사육제는 없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계에 맞춰 도계와 도축은 위생의 이름으로 전용 시설에서 이뤄진다. 소비자는 핏물마저도 깨끗하게 빠져 있는 상품으로서의 고기를 무심히 구울뿐이다. 모자이크로 처리된 살처분 장면을 TV로 보면서 말이다.

죽임의 현장과 멀어질수록 먹는 일에 감정은 실리지 않는다. 가급적 더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러니 당국이 저리 빨리 수입카드를 빼어 들고 ‘걱정 마라. 세계는 넓고 고기는 넘쳐난다’는 메시지를 친히 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먹는 사람, 죽이는 사람 따로 놓인 세상에 땅에 묻힐 소의 머릿수만 무심히 늘어간다. 조류독감도 아직 창궐 중이니 죽어가는 닭의 머릿수도 자꾸 보태어진다.

농촌의 안부는 이렇게 묻는다. 올해는 무엇을 심고 한 해의 농사는 어땠느냐고. 그래서 나도 여쭈었다. “댁내 소는 안녕하신지요?” 충남에서 젖소를 키우는 한 농장주의 대답은 “하늘에 맡겼다”는 인사로 받아안으셨다. 축산은 현대 농업의 승리라 배웠는데 축산이 천수답 농사였는지는 이제 깨닫는 중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