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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은 지금 ‘하궁기’다. 6월 2주차까지 강사비가 정산되고 나면 9월 말일까지는 봉급이 똑 끊긴다. 물론 겨울방학인 ‘혹한기’도 넘겨야 한다. 방학 중에 봉급 끊긴다고 끼니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네 생활 이해하니 이번 달 공과금은 면제해 준다는 희소식이 올 리도 만무하다. 생활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굴려 가는 것. 억울하면 출세를, 아니 정규직을 했어야 했나. 내가 원해서 있는 방학도 아니건만 직장은 잠시 멈춤 상태이고 통장도 멈춤 상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무노동 무임금의 논리를 세우지만 나는 방학 때 쉬어본 적이 없다. 개강 몇 달 전에 강의 계획서를 올리고, 그것에 맞게 책 줄이라도 읽는다. 학교 행정 일정에 맞춰 서류 작업도 한다. 종강을 해도 성적 처리와 행정에 매달려 있지만 그 시간은 무급 노동이다. 나의 노동은 강의실 수업만이 환금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꿈의 직업’인 정규직 교사들은 방학 때 근무를 안 하는 것일까? 실제로 방학이란 건 학생들한테나 해당한다(결국 특강이란 이름으로 학원에서 털리고 있겠지만). 방학 중 교사들은 직무연수를 하고, 학생들 동아리 지도와 수업 교안 짜기 등의 업무가 이어진다. 게다가 요즘 여름방학은 초등생이 한 달 정도에 불과하다. 중·고생들은 채 3주가 안 된다. 학교 행정실 근무는 방학 중이어도 일상적으로 굴러가는 데다 방학 중 특강 수업도 이어진다.

다만 학교에 학생들이 없으면 급식은 멈춘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영양사와 급식 조리종사원들에게 방학 중 당연히(!) 임금도 없다는 논리가 먹힌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을 제하면 학교의 비정규직 영양사와 조리원들의 근무는 9.5개월에서 10개월 정도다. 두 달여의 임금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달 정도의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돌아가야 할 직장을 두고 한달 만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며칠 전 만난 학교 영양사는 방학 중에 2학기 식단계획 수립부터 식재료 발주 고민, 조리실 수리 등 학기만큼이나 바쁘게 보내지만 그 노동에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오로지 한 끼의 식판만이 노동의 값어치가 매겨질 뿐이다. 학교 급식 조리원들은 학기 중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병 치료를 하거나(특히 근골격계와 피부질환 등은 직업병이다), 실제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기도 한다. 뜨거운 음식을 다루는 일엔 이력이 붙어 여름 한철 바쁜 삼계탕집에 일을 맞춰 두었다는 어느 조리원의 한 마디가 복날 삼계탕만큼이나 뜨겁게 아팠다.

그런데 내가 이 하궁기를 요긴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방학 중 영양(교)사와 조리원 직무연수에 강사로 불려 다니면서부터다. 교육청별로 조리실습과 식품안전 교육,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역량강화 교육이 이루어진다. ‘동네 밥하는 아줌마’들이 염천에 모여 수업도 듣고 조리 실습까지 하느라 부산스럽고 고되다.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그 자체로 교육 행위다. 그래서 이렇게 덥고 추운 날 모여서 배우고 익히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모 교육청에서 실시한 영양사 직무연수에 가서 생활비도 벌충하고 만둣국 실습에 묻어서 한 그릇 푸지게 얻어먹었다. 지금은 여름이지만 찬바람 부는 계절에 대비해 만드는 열성 가득한 음식들로 조리 실습 계획이 짜여 있다. 한 계절 앞선 그녀들에게는 방학도 없고 임금도 없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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