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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청 비리는 이적 행위다.” 이런 말을 현직 대통령에게서 들을 줄이야! 오랜 세월 동안 “이적”은 ‘저들’의 전유물이었다. 부메랑을 돌려준 기분이랄까. 분단 체제에서 이적 행위 담론은 참으로 손쉬운 통치 전략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군사(軍事)와 국방 관련한 비리는 규모도 규모거니와 사실 파악이 어렵다. 전문가주의가 비밀주의로 둔갑해 접근 자체를 이적 행위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세계 최강’ 미국은 다르다. 그들의 국방백서는 글자 그대로 숨김없는 ‘화이트 페이퍼’이다.

미국은 국방정보국(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을 통해 복잡한 무기체제 데이터부터 해외 군사 리더의 생애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 미국은 민간인만 국방부 장관이 될 수 있다. 군 출신이 장관이 되려면 전역한 지 10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한국의 국방부는 군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미국의 국방부는 국민이 군을 견제하는 기구, 문민 통제(civil control)의 개념에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에서도 군대 내 성폭력이나 군수 비리는 빈번하다.

이번 박찬주씨 부부 사건에서 놀라운 점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의 구두 경고에도 불구하고 학대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공관병 인권 침해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몇 년 전 논문 관계로 군인들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공관병 근무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상기하면, 이번 사건의 진상은 보도된 내용 이상이다. “자녀 영어 과외”와 “달리기로 골프공 줍기” 같은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난 5월, 성폭력 사건으로 해군 대위(여성)가 자살하고 그녀의 직속상관인 대령(남성)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

‘공관병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 부인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단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직업 군인의 일상적 스트레스 중 하나는 상관 가족과의 대면이다. 일부 군부대에서는 부부 동반으로 같은 교회에 다니거나 야유회, 산행을 금지하고 이를 지침서로 배포하고 있다. 상관 부부에게 자신의 아내를 노출함으로써 생기는 가정 파괴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부하 아내의 ‘쓰임새’는 각각 다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물론 성폭력이나 ‘을’에 대한 인권 침해가 군대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회 조직도 마찬가지다. 정치, 종교계, 대학, 군대…. 어느 분야가 더욱 유별난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군 전체를 비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문제는 군의 대처 방식이다. 한국의 군대 문화는 외부 개입이 어렵다. 문제를 사회화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 즉 전문가주의로 포장한 비밀주의와 쿠데타의 기억으로 인한 민군 관계의 배타성 때문이다. 남성이라고 모두 군대 용어가 익숙한 것은 아니다. “내 아내를 여단장(旅團長)급으로 대우하라”는 박찬주씨의 말을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남성들이 “여단장(女團長)인 줄 알았다”고 농담(?)할 정도다.

군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다. “슈퍼(PX)부터 법, 대학, 상조회까지 모두 있고”, 집단으로 거주하고 근무한다. 건강한 사회는 내외부의 교류가 자연스럽고 유동적이다. 외부와의 문화적 차이가 클수록 내부의 문제는 심화된다. 북한 사회의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폐쇄성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해와 적대는 강화되고 대화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전문가주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 분야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다른 분야는 ‘전문’이 아니라는 인식과 ‘전문’들의 위계에서 가능하다. 차이는 선 긋기에 따라 달라진다. 기밀은 ‘적’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이지, 국가 내부에서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민간인’을 적대하는 행위가 되기 쉽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폐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겹치면 이언주 의원이나 종근당 회장 같은 이들이 탄생한다. 이들은 엘리트라는 착각 혹은 엘리트가 되지 못한 열등감 때문에 자기 인식 능력이 없다.

나는 얼마 전 여성가족부 소속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민무숙)에서 전문 강사 보수 교육을 한 적이 있다. 수강생 중에 자신의 직업을 유난히 강조하는 여성 변호사(법무법인 ‘다율’의 전직 군 법무관)가 있었는데, “군대 성폭력은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에 절대로 외부에 유출될 리가 없다”, “나만 군대 전문가다”는 말을 반복하는 바람에 강의가 중단되었다. 그녀의 인식을 고려할 때, 20년간 처리했다는 사건의 은폐 가능성이 우려된다. 국방부는 그녀가 맡았던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그녀에게 강사 해촉을 비롯,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복지부동의 전형으로 그녀의 행동이 알려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다른 수강생과 달리 군 법무관 출신이라는 배경이 두려웠을까. 박찬주씨는 군대에서, 이 여성은 군대 밖에서 갑질을 하고 있다. ‘갑’이라는 우월감은 국민(‘민간인’)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에겐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전문가이자 특권의 근거다.

박찬주씨 사건은 작년 4월에 알려졌다. 가해자를 찾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이 은폐 구조가 사건의 핵심이다. 문제 해결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은폐는 조작을 낳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 성역으로서 군대는 국가안보에 기능적이지 않다. 전문가주의는 비리와 무능을 합리화하는 용어다. 진정한 국방 전문가는 자기 경험을 개방하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고 배움으로써 만들어진다. 전문가와 전문가주의는 다르다. 전문가는 더욱 필요하며, 전문가주의는 폐기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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