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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니스를 방문했다. 3월의 니스는 예상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파리 시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깨끗한 거리가 인상적이었고,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은 시민의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시차로 인해 새벽에는 해변가에 설치한 흰색 의자에 앉아 홍세화의 책을 다시 읽었다.

미술가 마티스와 음악가 파가니니가 말년을 보냈던 니스는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휴양도시다. 지금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니스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대한민국에 제주도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니스가 있다. 칸, 망통, 에즈, 앙티브, 생폴드방스는 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들이다. 음유시인 레오 페레의 고향인 모나코 역시 니스에서 버스로 40여분이면 도착한다.

사흘 내내 니스 해변가를 오가며 반복해서 마주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젊은 남자였다. 입가에 적당한 미소를 머금은 관광객과는 다른, 희로애락을 파악할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걸음은 느린 편이었고, 오후 햇살이 제법이던 니스의 날씨와 상관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해변가를 거닐던 인파 중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2017년 3월에 목격한 니스의 풍경이다. 이번에는 다른 시간대의 니스로 이동해 보자. 이번에는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수영복 차림의 인파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은 2㎞가 넘는 해변가 인도를 더딘 걸음으로 활보한다. 한손에는 음료수를, 다른 손에는 간식거리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즐거움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그들의 뒤편에서 큼지막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그림자의 정체는 대형트럭이었다.

순식간에 인도로 돌진한 트럭은 무려 1.8㎞를 질주한다. 그것으로 부족했을까. 트럭 운전사는 폭주를 멈춘 뒤 시민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다. 이 사건으로 86명의 사망자와 100명이 넘는 중상자가 니스 해변가를 피로 물들였다. 집단학살극이 벌어진 시간은 2016년 7월14일이었다. 일명 바스티유의 날로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 벌어진 참사였다.

내가 해변에서 마주친 남자들의 정체는 바로 프랑스 무장군인이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네 명의 병력은 사각 편대로 니스 해변가에서 경계근무 중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니스의 번화가나 공항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게다가 니스에 도착한 다음날, 런던 중심가에서 테러가 발생해 유럽 전체가 불안과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소매치기나 불량배가 적지 않다는 소문은 적어도 니스 해변가에서는 기우에 불과했다.

무장군인의 존재 덕분에 니스행은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막연한 우려와 달리 테러 직후의 장소는 의외로 안전하다. 그곳은 경찰이나 군병력이 두 번째 참사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참사의 흔적까지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해가 떨어진 니스 해변가는 2016년 여름에 벌어진 비극을 떠올리듯 스산하고 울적했다. 니스와 런던 참사 이후 소프트 타깃이라 불리는 민간인 참사의 현장이던 술집, 지하철, 경기장 등 밀폐공간에서 벗어난 모든 지역이 테러의 대상이라는 공포감이 확산됐다. 아쉬운 부분은 중동이나 남미 지역에서 꾸준하게 벌어지는 묻지마 테러는 언론의 주목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테러의 청정구역으로 알려져 왔다. 늦은 밤에도 서울 곳곳을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된다. 미국과 달리 총기나 마약류에 대한 단속이 철저한 편이다.

하지만 대규모 테러의 가능성으로부터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테러는 패권주의 국가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도시를 목표로 한다. 뉴욕, 런던, 파리, 니스가 그랬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다. 지금부터라도 서울의 이미지를 평등과 정의의 상징으로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의 변신은 도시의 정체성을 탈바꿈해 주는 일종의 숙주이다. 올해도 니스의 여름은 서울처럼 뜨겁고 번잡할 것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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