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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학교 잘 다녀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인지 확신이 없다. 한해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하고, 성적 경쟁의 스트레스로 망가진 마음을 안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배움의 즐거움이 사라진 학교에 우리의 자녀들을 보내고 있다.

학교는 왜 망가졌는가? 많은 사람들이 입시 과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최근 고등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내신이나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너무나 교육적으로 보이는 이 정책을 가로막고 있는 공통된 가치는 변별력이다. 타고난 능력 때문인지, 부모의 철저한 뒷받침 때문인지 묻지 말고 시험을 잘 본 학생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이 방법 외에는 서로 가고 싶은 학교에 대해 누가 갈 건지 결정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른 방법에는 동의하거나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입시지옥의 문안에 갇혀 있다.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그리고 학교에서 정말 많이 힘들었던 많은 성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이제 ‘변별력’이라는 이 망국의 가치를 폐기하자고 주장하고 싶다.

그럼 ‘변별력’이라는 가치를 폐기하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까? 대학 입시를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은 방안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고등학교는 교사들이 자신이 가르친 내용에 맞게 교사별로 학생을 평가한다. 그 평가가 누가 봐도 옳은 평가인지 전문 평가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아 객관성을 확보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교사와 학교는 교육과정의 전문성을 향상시킨다.

대학교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이 되는 학생의 지원을 받는다. 대학교는 자신의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학과별로 필요한 이수 교과목과 교과목의 성적 및 수능 점수의 하한점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을 지원하고 대학은 일정한 자격이 되는 학생들 중에서 정원의 150%의 학생을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선발한 학생 중 50%의 학생은 면접을 통해 입학을 불허한다.

위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대학이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고교 간 실력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공정성과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많은 의문과 홍역을 치르겠지만 이것이 정말 자녀에게 좋은 학교를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니 이 방법이 기존의 방법보다 더 좋아서 몇 명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 ‘변별력’이라는 지옥의 문을 열고 조금 더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홍인기 |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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