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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중에서 여름 김치로 지겹도록 먹은 양배추 김치, 감자 값 폭락에 몇 달 내내 감자만 먹었다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 과장된 면도 있지만 가격이 폭락한 농산물의 소비 진작을 위해 늘 군대가 동원되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근래엔 군부대와 소비자들에게 양파 좀 많이 먹어 달라 호소하고 있다.    

주기적인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것이 한국 농산물의 숙명이지만 이번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락이다. 현재 양파 도매가격이 ㎏당 400원대다. 양파 1㎏이면 주먹만 한 양파 4, 5개가량이고 가정에서 한참 먹을 양이다. 전철역에서 파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이 400원이니, 양파 값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6월17일 경북 안동시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 가득 쌓여 있는 양파를 농민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올해 전국적으로 양파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산지 가격이 폭락했고 안동농협에 들어오는 양파 물량도 지난해보다 5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올해는 햇양파인 조생종 양파도 출하량이 많아 잔뜩 쌓여 있는데, 6월 들어 중만생종 양파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양파 값이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급하게 정부나 농협은 시장격리(산지폐기)에 나섰지만 조치도 늦었고 그 양도 충분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 사람들은 왜 내 세금을 들여 농가를 지원하느냐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양파 생산이 늘어난 이유로 풍년을 꼽지만 이것 때문만이 아니다. 양파는 따뜻한 날씨에 잘 자라서 주로 남녘에서 길러왔다. ‘창녕양파’ ‘무안양파’처럼 따뜻한 지역이 양파 주산지였고, 귀한 소득 작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득은커녕 빚만 안 지면 다행이다. 기후가 뜨거워지면서 농작물 재배한계선이 북상하고 전국적으로 재배지가 늘어난 품목 중 하나가 양파다. 논에 타작물을 심거나 아예 휴경을 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논 타작물 지원사업도 한몫했다. 논에 심을 수 있는 대표적인 타작물 중 하나가 양파와 마늘이고 몇몇 지자체는 양파를 새로운 쌀 대체작물로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쌀값이 미친 ‘나비효과’다. 

반대로 2015년엔 양파 값이 폭등했다. 당시 20㎏ 한 망에 산지가격이 1만6000원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20㎏ 한 망에 5000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때 양파 농가에서는 돈 좀 만졌을까? 당시 양파 값이 오른 이유는 그 이전에 폭락을 겪은 터라 양파 재배가 줄었고, 날씨도 험해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전거래(밭떼기)를 주로 하기 때문에 돈 만진 건 농민들이 아니었다. 외려 값이 너무 올라 생산자들은 불안해했다. 후년에 많은 농가들이 양파 농사에 뛰어들까봐서다. 농산물 생산과 수요에 대한 국가의 예측이나 권고는 번번이 빗나가고,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이 있어서 쉽게 믿지 못한다. 농촌에서는 오죽하면 정부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면 살아남는다고들 할까. 혹자는 이런 반복을 겪으면서도 또 그 작물을 심느냐며 힐난하지만, 다들 더럽고 치사해도 직업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왔던 일을 하는 것뿐이고 고령의 농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작물에 도전하라는 것은 직업을 바꾸란 뜻이다. 은퇴를 해야 할 고령농민들이 생계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지으니 생산량 조절도 쉽지 않아 악순환은 반복된다.  

양파 값 폭락 문제에는 오래도록 적체된 한국 농업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대책은 약간의 시장격리조치와 보조금이 잔뜩 들어가는 수출 카드, 그리고 소비촉진운동 정도다. 때마침 외식사업가 백종원씨가 양파 많이 먹자며 양파를 볶으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따라해 보는 중이지만, 연이어 마늘도 폭락장이다. 그럼 이제 마늘요리 시연이 나올 차례인가? 소비촉진은 대안이 아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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