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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착한 소음

opinionX 2019. 7. 4. 10:29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들어가서 ‘백색소음’을 검색하면 꽤 많은 영상이 뜬다. ‘잠 잘 오는 음악-빗소리 백색소음 5시간 연속 듣기’는 조회수 1000만을 돌파한 ‘대박 콘텐츠’다. ‘집중력 높이는 소리-빗소리 효과음 백색소음 ASMR’은 413만, ‘서울대 도서관 백색소음 2시간’은 296만의 조회수(3일 오후 6시 현재)를 각각 기록 중이다. 

영상을 들어보면 제목 그대로다. 빗소리 백색소음에는 빗소리만 나오고, 도서관 백색소음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나 재채기 소리 등이 아주 작게 들린다. 이런 콘텐츠들이 왜 인기를 끄는 걸까.

백색소음(white noise)은 음폭이 넓어 일상생활에 방해되지 않는 소음을 말한다. 백색광(white light)에서 유래된 용어다. 모든 파장의 빛이 균등하게 혼합되면 흰빛(백색광)을 띠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고루 섞이면 백색소음이 된다. 시냇물 소리, 비 오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같은 자연과 일상의 소리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백색소음은 자극적이지 않고 평탄해서 귀에 익숙하다.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역할도 한다. 독서실의 완벽한 정적보다 카페의 적당한 소음 속에서 공부가 더 잘된다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이 때문에 요즘 새로 개업하는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들은 “집중력 향상을 위한 백색소음기를 설치했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유럽연합(EU)이 이달부터 EU 회원국 내에서 개발·판매되는 신형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해 ‘엔진 소리’를 내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BBC·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들 차량은 후진하거나 시속 12마일(19.3㎞) 이하 저속으로 주행할 때 엔진 소리와 비슷한 경고음을 내는 시스템(AVAS)을 달아야 한다. 휘발유·경유차와 달리 엔진 소리가 없거나 작은 전기차·하이브리드차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는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거나 배출량이 적다는 요소 외에 무소음·저소음이 또 다른 강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용해서 위험’하다면 마땅히 정숙성을 양보하는 게 옳다. 소음이라고 모두 추방할 대상은 아니다. 착한 소음도 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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