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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초등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를 물으면 ‘물부족 국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물이 부족해 고통스러운 미래를 그리며 캠페인을 벌이니 물부족 국가라는 인식만은 확실히 한 것 같다. 2019년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다시 묻는다면 아마 ‘저출산·고령화’ 시대라고 대답할 것 같다. 청량리역 인구탑을 보면서 인구폭발로 한국이 궤멸할 듯한 위기감 속에서 자랐지만, 막상 내가 아이를 낳을 때는 더 낳아보라 부추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불과 30년도 내다보지 못한 정책이 인구정책이다. 

얼마 전 경북 의성군에 다녀왔다. ‘롯데리아’마저도 휴무일이 있는 곳이다. 때마침 학교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바나나맛 우유를 먹는 의성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대도시 풍경과 다르지 않다. 몇몇 중·고생들도 편의점에 들락거렸지만 이내 읍내는 고요해진다. 분식집의 유일한 피크타임일 텐데 제대로 개시를 못한 것 같았다. 장날이 아닌 평일 농어촌 읍내 풍경은 대략 이렇다. 

그래도 계절은 또 돌아와 들판에는 마늘이 쏘옥 올라왔다. 의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의성마늘’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종종 ‘지방소멸 위험 1위 지역’이 의성을 떠올리는 이미지인 것 같다. 외부인보다는 주민들이 그리 규정한다. 택시에 올라타자 택시 기사는 “읍내에 사는 인구가 1만도 안됩니더. 곧 소멸됩니더”라며 외지인인 내게 의성군을 딱 한마디로 정리해주었다. 인근의 상주시는 인구 10만명 선이 무너지자 공무원들이 ‘상주’ 된 마음으로 검은 상복을 입고 출근하면서, 10만명 지키기에 사활을 건다는 소식을 전했다. 택시 기사는 대학이라도 있는 상주시 상황은 의성에 비할 바가 아니라며 탄식을 보탰다. 

지방소멸에 대한 논의는 일본의 지방소멸 위험을 경고한 ‘마스다 보고서’에서 착안해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보고서를 냈다. 그리고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공식화된 말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65세 이상 인구수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2배 이상 많으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이 소멸위험지역 1위에 들어서고 만다. 하지만 전국 농어촌 상황은 다 엇비슷하다. 보고서 기준을 적용하면 향후 30년 내에 84개 시·군, 1383개 읍·면·동이 소멸위험이며 이는 전체 마을의 39%에 이른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농촌이 휑한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막상 ‘소멸위험’이라는 말을 들은 지역민들의 박탈감은 매우 큰 듯하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맥이 빠질 것이다. 경각심을 가지란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겠지만 중앙집중적인 말이고 말의 온도가 너무 차갑다.  

그래도 의성초등학교 아이들은 재잘대면서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태권도 사범을 따라 태권도 도장으로 몰려간다. 피아노 학원과 문구점도 있으니 아이들은 계속 자랄 것이다.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고장이라면 그 부모는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다. 지금 사과와 마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농사지어 살 만하다면 그 모습을 보고 떠나지 않을 농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의성마늘과 의성사과는 여전히 인기 만점일 것이다. 며칠 전 보니 전지작업이 말끔하게 끝난 사과나무에 꽃망울이 웅얼웅얼 맺히고 있었다. 지금을 돌봐야 한다. 그것만이 소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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