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 주먹보다 조금 큰 걸 보니 첫물 참외인가 보다. 용달차에는 노란 현수막으로 ‘성주 꿀참외’라 적혀 있고 참외를 담는 비닐봉지도 노란색이다. 참외의 계절이 온다. 전국에 참외 농가가 성주군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참외 하면 성주를 떠올린다. 그런 성주가 갑자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참외의 고장에서 ‘사드’의 고장이 돼버렸다. 지난 계절 내내 성주 주민들은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26일 새벽,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의 핵심 장비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진입했다. 성주 주민들이 다치고 연행되면서 지옥이 펼쳐지는 중이다. 사드 배치는 차기 정권에서 결정할 문제였다며 문재인·심상정 후보는 비판했고,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잘된 일이라 한다. 안철수 후보는 환경영향평가의 절차상 문제를 언급했다. 사드 배치의 찬반 여부는 대선후보와 그 정당의 이념 지표를 드러내는 일이었고 대선의 주요 이슈이기도 했다. 오로지 ‘국가안보’ 차원에서 말이다.

네 번의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있었다. 갑자기 치러지는 대선이니만큼 TV토론은 후보마다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거친 언사가 오고가기도 하고 정책을 과하게 내지르기도 하지만, 모든 선거의 핵심은 먹고사는 일, 즉 경제 정책에 관한 일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은 비단 한국의 대선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세계의 모든 선거는 대체로 경제 문제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너무 길게 이어지는 불황과 실업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은 대선후보들의 입에서 어떤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지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네 번의 TV토론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언반구도 없는 분야가 농어업을 포함한 먹거리 정책이다. 농어업단체의 초청에 응해서 각 당의 농어업 정책이 발표되기는 했지만 전 TV토론에서는 그 어떤 후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각 정당과 후보의 농어업 정책을 살펴보면 대체로 좋은 정책들이 쏟아져 있다. 대통령 직속의 농어업기구 설치, 쌀값 보장부터 식량자급률 목표 설정, 농민소득 보장을 위한 농업 예산 확충과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물론 홍준표 후보 빼고)를 내걸고, 귀농 지원과 청년 농부 지원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업 정책도 마찬가지다. 바다 환경을 정화하는 동시에 어족 자원을 확충하고 중국 어선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좋은 어촌 정책들이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야 농어촌도 살 만하겠다 싶어진다.

보통 양보다는 질이라지만 농어업 정책만큼은 발언의 질보단 양이 문제다. 어차피 대다수 국민들은 도시에 모여 살고 후보들의 표밭은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다. 정서적으로 농촌에 닿아 있던 선거는 오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으니 짧은 선거 기간에 도시에서 승부를 거는 일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주군을 참외와 연결 짓지 않고 오로지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의 문제로만 판단을 내린다. 밀양의 송전탑 싸움이 그랬고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도 그랬다. 농어촌은 국가의 배후지로 언제든 먹혀도 되는 존재라는 듯 밀어냈다. 땅값도 싸고, 주민들도 적고 힘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겠지. TV토론이 두 번 남았다. 경제와 사회 분야에 대한 집중토론이라지만 농어촌 문제가 어디 낄 자리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가장 먼저 버려진 사회와 경제 부문이 농어촌이니 이번에도 뒷전일까. 사드의 전자파 밑에서 자라지 않은 다디단 성주 참외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

정은정 | 농촌사회학 연구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