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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걷는 이 발걸음이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상에 있는가? 이 길은 나의 숭고한 여정의 필수불가결한 단계인가? 나는 아침마다 내가 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거룩한 과정이며 동시에 목적지이길 기도한다. 스승이란 인생의 길 위에서 나의 최선을 촉구하는 존재다. 스승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그 길을 이미 묵묵히 걷고 있는 도반(道伴)이자 선각자다.

서양에선 스승을 ‘멘토(mentor)’라고 부른다. ‘멘토’라는 영어 단어는 1750년경부터 문학 작품에 등장해 오늘날까지 ‘스승, 조언자’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멘토’는 인도유럽어권에서 ‘생각하다’라는 의미인 ‘만(man)’의 사역형인 ‘멘(men)’에 ‘~하는 사람’이란 뜻의 어미인 tor를 첨가한 것이다. ‘멘토’를 직역하자면,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멘토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의무를 성찰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순간을 사는 인간이 주위의 기대나 체면 때문에 부화뇌동하기 쉬운데, 멘토는 자신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고 촉구하는 존재다.

멘토 이야기는 서양사상의 바이블이자 최소 소설인 <오디세이아>에 나온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750년경 기원전 12세기에 일어난 트로이전쟁에 관한 오래된 노래를 기록했다. 그리스인들이 이전에 사용하던 문자들, 즉 미노스섬의 선형문자 A나 미케네섬의 선형문자 B가 음절문자 형태이기 때문에 이 노래들을 기록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문자를 누가 만들었는가는 아직 논란거리지만, 아마도 호메로스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인 페니키아 문자를 수용하고, 페니키아 자음 중 몇 개를 모음기호로 전환시켜 고대 그리스 알파벳을 만들고, 400년 이상 구전으로 내려온 노래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책으로 남겼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 이야기이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 후 집으로 돌아오는 ‘귀향’에 관한 이야기다. 서양에서 <일리아스>는 시의 원형이 되었고 <오디세이아>는 소설의 시조가 되었다. 아니 이 두 권의 책은 서양문명을 낳은 어머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참전했던 영웅들은 귀향했지만 한 명은 예외였다. 오디세우스다. 그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엔 그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의 작품 명이며 동시에 ‘인간의 고단한 삶의 과정과 여정’을 뜻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891년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괴물인 폴뤼페무스 눈을 상하게 만들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귀향하는 항해가 모질게 되었다. 오귀기아라는 섬에선 그 섬의 여신인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를 7년 동안 섬을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 고향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20년 동안 돌아오지 않자, 이타카와 주변 섬들의 영주들은 페넬로페와 결혼해 이타카의 왕이 되려고 궁궐에서 매일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지내고 있었다.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출정하기 전 태어난 아들로 이제 21살이 된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 ‘텔레마코스’는 그리스어로 ‘전쟁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란 의미다. 그는 20년 동안 고아와 다름없이 지냈다.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이타카의 왕이 될 수 없고, 어머니 페넬로페가 다른 영주들의 아내가 될 위험에 빠져 자신은 왕자에서 하찮은 존재가 될 상황이었다. 자립을 해 본 적이 없는 텔레마코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미지 ‘경계’로 자신을 밀어내는 용기였다.

멘토는 원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원정을 떠날 때,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한 친구였다. 아직도 유약한 텔레마코스는 더 이상 자신에게 처한 딜레마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단한다. 그는 혼자서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으로 가 무시무시한 회색 파도에 손을 씻으며 의미심장하게 외친다. “아테네 여신이여, 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당신은 어제도 우리 집에 방문하셔서 행방이 묘연한 나의 아버지의 귀향에 관한 소식을 알기 위해 나에게 배를 타고 잿빛 심연 바다 위로 항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오디세이아> 2.262-4)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여신 아테네가 아버지 친구인 늙은 멘토로 변신해 말한다. “텔레마코스! 너에게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고귀한 용기가 스며있다면, 너는 바보도 비겁한 자도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말을 어긴 적도, 자신의 일을 미완성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그를 찾아 나선다면, 너의 여정은 성공할 것이다.” 그 후,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안개가 자욱하고 큰 파도가 넘실대는 아드리안 바다로 나가 영웅 네스토의 섬 퓔로스와 영웅 메넬라우스의 섬 스파르타로 항해를 떠난다.

이 이야기에서 텔레마코스의 스승은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오랜 친구 멘토나 그로 변장한 여신 아테네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텔레마코스의 스승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멘토’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독수리의 눈으로 꿰뚫어보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바다로 가서 손을 씻는 그 순간에 서서히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특별한 존재다. 이제 텔레마코스는 늙은 아버지 친구 멘토의 말을 통해서도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구태의연함과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안주하는 사람에겐 멘토가 찾아오지 않는다. 흉흉한 바다에 몸을 실어 인생의 항해를 떠나는 순간 멘토가 찾아온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지금 이 시점에서 새롭게 조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신이 바로 멘토다. 당신은 그런 멘토가 있는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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