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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두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인간은 응시의 대상인 ‘밖’을 파편적이며 왜곡된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시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불어나 자신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괴물의 하수인이 되어 세상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힌다. 이 순간 응시의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덤덤하게 보는 것’이다. 그 대상을 자신의 구태의연함으로 보지 않고 생경하게 바라보기를 연습해야 한다. 일상과 구별된 나만의 시공간에서 나를 멀찌감치에서 관찰하기를 수련하다 보면, 그런 나를 적나라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행위가 회심(回心)이다.

내 안에는 ‘과거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의 나’, 혹은 ‘과거의 나’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미래의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 오래된 나, 원래의 나를 ‘첫번째 나’라고 부르자. ‘첫번째 나’는 흘러가버린 과거에 안주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지금 이 순간의 삶에까지 영향을 준다. 자기혁명(自己革命)은 이러한 나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결별하려는 의지다. 우리는 대부분 매일 매일 버려야 할 오래된 자아를 벗어버리기보다는, 그것을 붙잡고 강화하려 한다. 배움이란 나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려는 과정이다. 자아를 치장하고 강화하는 교육은 재미없는 세상을 구축할 뿐이다.

‘첫번째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심히 관찰하고 그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고 파괴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나’ ‘두 번째 나’가 필요하다. 이런 ‘또 다른 나’를 라틴어로 ‘알터 에고(alter ego)’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사상가인 키케로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에 등장한 정치철학자이며 문필가로 로마문명과 유럽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키케로는 흉금을 터놓고 무엇이든지 토로할 수 있는 친구 ‘앗티쿠스’가 있었다. 키케로는 그를 ‘알터 에고’, ‘또 다른 나’라고 불렀다.‘알터 에고’는 친구를 넘어서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작품과 심리학에서 차용되어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용어가 되었다. 문학작품에선 저자의 심리와 행동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인물이다. 연극무대 위에선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의 심리와 몸짓을 연구하여 완벽하게 구현해야 할 대상이다. 배우는 부단히 연습하여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 배우들은 ‘또 다른 나’에 몰입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그 배역을 충분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 가면을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고, 후에 ‘사람’이란 의미의 영어단어 ‘person’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또 다른 나’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는 ‘첫번째 나’를 파괴시키는 괴물이다. 한 인물 안에서 선과 악이 끊임없이 투쟁한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 안에 숨겨져 있는, 문명화된 세계를 경험하지 않아 어쩔 줄 모르는 ‘정신이상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만화로 시작하여 후에 영화로 만들어진 <슈퍼맨>에서 ‘또 다른 나’는 긍정적이다. 신문사 기자 클락 켄트는 진정한 자신을 감춘다. 그의 원래 이름은 ‘칼엘(Kal-El)’이다. ‘칼엘’은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신의 목소리’다. 칼엘의 부모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크립톤’(비밀스러운 땅이란 의미)이란 은하계가 파괴되기 직전, 칼엘을 살리기 위해 그를 바구니에 넣고 은하계를 연결하는 공간인 상상의 나일강에 띄워 보낸다.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의 탄생 이야기와 유사하다. 칼엘이 도착한 장소는 미국 캔자스주의 한 농가다. 그는 이 후미진 곳에서 평범한 소년으로 성장하지만, 그 흔한 햇빛의 세례를 받으며, 자신이 평범한 클락 켄트가 아니라 한 걸음에 높은 빌딩을 건너뛸 수 있는 ‘또 다른 나’ 슈퍼맨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내려오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거주한 장소와 시간을 넘어서는 영웅은 슈퍼맨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항상 관조하고 넘어설 때, 영웅이다.

내 삶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란 미지의 땅에서 만난 인생 멘토와의 만남이었다. 그를 찾아가 물었다.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내게 덤덤하게 말했다. “Show yourself!” 번역하자면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이다. 그가 원한 나의 모습은 그 앞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 있는 ‘과거의 아’가 아니라, 나를 넘어선 ‘또 다른 나’였다. 그의 목소리는 내 영혼을 울리는 신의 소리와 같았다.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찾는 수행을 시작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만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음력설이 진짜 새로운 해의 시작이다. 2015년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오래된 나를 과감히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찾는 여정을 새롭게 떠나고 싶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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