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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신나는 삶의 여정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과거는 나를 안정과 편안으로 유혹하는 달콤한 구속복이다. 이 옷을 벗어 던지기 위해선 불편한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진입시켜야 한다.

어제 있는 그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를 ‘엑스터시(ecstasy)’라고 부른다.

‘엑스터시’는 보통 무당이 경험하는 입신의 경지를 이르거나 마약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 그 원래 의미는 ‘자신의 과거나 사회가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state)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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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유일한 길을 가려고 결심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이 결심을 단단하게 여며주고 상기시켜주는 효과적인 도우미가 있다. 육체적 운동이다. 나는 28년 전, 한 멘토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주문했다.

“매일 아침 조깅하십시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공부하십시오.”

나는 이 조언의 심오한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그를 믿고 매일 아침 뛰기 시작했다. 내가 당시 살던 동네를 한 바퀴 완주하는 데 40분 정도 걸렸다.

오늘만은 예외로 조깅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수천가지다. 어제 피곤해서, 오전에 꼭 넘겨야 할 신문 글이 있어서 혹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 정당하고 달콤한 유혹이 나를 혼미하게 만든다. 내가 운동복과 운동화를 착용하고 뛰기 시작하면서도 발길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런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인가? 10분 정도 뛰면 벌써 헐떡이고 내 자신을 꾸짖는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 내가 미쳤는가?” 이런 불평을 하다보면 다시 10분이 지난다. 조깅과 관련된 구절이 하나 있다.

“당신이 30초를 달릴 수 있다면, 당신은 마라톤도 완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나는 이 상투적인 구절을 싫어한다. 30초가 아니라 10분이나 지났는데, 나는 지옥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20분 정도 지나면 숨이 차고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 머리는 외친다. “나는 달리기를 싫어한다.” 불평하면서 10분 정도 지나면, 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에 진입한다.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탈출한’ 이 30분경을 좋아한다. 엑스터시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후 10분은 순간처럼 지나가면서 천상의 선물이 몸에 스며든다. 온몸에 샘솟는 땀, 근육의 미세한 떨림, 가파른 심장의 두근거림, 거칠게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땀이 흐르는 얼굴에 가만히 드러나는 미소다. 내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나는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남자 아이를 위한 고이노보리에 만드는 잉어모양 천으로 된 깃발 _경향DB


일본에 하늘로 날아간 물고기 신화가 있다. 이 물고기를 ‘고이’라고 부른다. 고이는 ‘잉어’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며 연못이나 어항에서 볼 수 있는 주황색 물고기다. 한 조그만 잉어가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모든 수고들 중 가장 숭고한 행위인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한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강물을 거슬러 헤엄쳐 ‘갈 때까지 가보는 힘겨운 노력’이다.

고이는 매 순간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한눈을 팔다간 자신도 모르게 한참 떠내려가 바다 입구까지 밀려간다. 강물에 몸을 실어 내려가는 다른 물고기들은 고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시류에 어울려 살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극복할 수 없는 강물을 대적한다는 말인가! 고이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못 들은 체하지만, 사실은 금방이라도 다른 물고기들처럼 강물에 몸을 맡기고 싶다.

그러나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고 싶었다. 고이는 뾰쪽한 돌에 부딪혀 피가 나고 다른 포식어류들의 공격에 노출되지만 이 강물의 원천(源泉)으로의 외로운 여행을 감행한다.

고이가 강물에서 만나는 장애물들과 자신의 마음에 생기는 부정적인 생각조차 자신을 매 순간 단련시켜 강하게 만든다. 강물의 상류로 가면 갈수록 물길이 거세지고 지세는 가파르게 변한다. 고이의 체력이 강해진 만큼, 고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배 이상으로 어려워진다. 고이의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을 때, 고이를 완벽하게 좌절시킬 만한 장애물이 등장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90도로 세워진 폭포다. 하늘에서 쉬지 않고 퍼붓는 폭포수는 고이 몸을 거의 산산조각으로 찢을 수 있다. 고이는 망연자실한다. 도저히 거슬러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이는 불가능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내가 비록 물고기지만, 물고기이기를 포기하겠다. 지느러미와 꼬리를 날개로 만들어 폭포 위로 날아가면 되지 않는가!” 고이의 자기믿음이 그 순간에 그를 한 마리 용으로 변모시켰다.

고이는 자신을 가차없이 떠내려 버리는 강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용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밑에 아련하게 사라지는 폭포수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당신은 시류에 떠내려가 피라미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신화를 찾아 용이 될 것인가?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매 순간 자기확신과 그 확신을 지켜내는 인내다.

자신의 신화를 구축하고 그 신화를 찾아 인내하는 자가 성공하는 자다. 내가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 어떤 것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성공이 아닐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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