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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영화 <명량>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감옥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해군을 없애라는 선조의 명령에 대해 명량대첩을 준비하며 올린 답변이다.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고 배수진을 친 장수의 심정을 잘 보여준 말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풍전등화에 놓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가 첫 외부행사로 현충원을 방문했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방명록에 바로 이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고 한다. 새정치연합의 사활을 결정할 비대위원장을 맡은 문 위원장의 비장한 각오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적절한 구절이다. 그러나 실제 새정치연합이 현재 취하고 있는 길이 과연 이순신이 걸어갔던 ‘명량의 길’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아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명량의 길’이 아니라 ‘선조의 길’, ‘원균의 길’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사실 외형적으로 보자면, 현재 새정치연합이 처해 있는 상황을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순신은 불과 12척의 배밖에 남지 않아 그 적은 수의 전선을 가지고 330척의 왜군과 싸워야 했지만 새정치연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무려’ 전체 의원수의 43%에 달하는 130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리고 있다. 또 ‘적군’인 새누리당은 전체 의원수의 과반수인 53%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정치연합보다 ‘겨우’ 28명 더 많은 158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명량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해 볼 만한 싸움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이 사즉생의 자세로 죽음을 각오하고 배수진을 친 명량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명량의 길을 가기에는 너무 몸집이 크고 아직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른 것 아닌가” 싶다. 그간의 행적을 볼 때 새정치연합이 내부적으로 혁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사실 남아있던 유일한 희망은 대중적 지지를 무기로 안철수 의원이 밖에서 강력한 대안정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깨거나(‘외파’),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안에서 당을 폭발(‘내파’)시키는 안철수 카드였다. 그러나 이 카드는 안 의원의 한계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이 점에서 안 의원은 너무 일찍 새정치연합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를 참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안철수 카드까지 실패한 마당에 유일한 대안은 당의 리더들이 대승적 자세에서 스스로의 목을 단두대에 올리고 계파에 연연하지 않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외부인사에게 비상대권을 주어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그 같은 ‘명량의 길’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한, 그러나 결국 죽음으로 가는 ‘선조의 길’, ‘원균의 길’을 택했다. 덕을 갖춘 덕장으로 위기 때마다 비대위원장이 전문인 문희상 의원이 다시 불려나왔고 비대위는 주요 계파의 수장들로 채워졌다. 심하게 말하자면 ‘혁신의 대상’들을 ‘혁신의 주체’로 앉힌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현재의 비대위가 차선일 수는 있다. 즉 당의 실세들이 모인 만큼 실질적인 권한을 갖지 못한 들러리식의 외부영입 비대위가 혁신 흉내만 내다마는 것보다는 최소한 낫다. 이제 당의 실세들이 모인 만큼 과거처럼 뒤에 숨어서가 아니라 공개된 경기장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민낯을 드러내고 한번 싸워보고 국민들에게 당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초·재선 의원들이야 어차피 대권 등과 관련이 없는 만큼 국회의원 재선에 주로 관심이 있겠지만, 이들은 그 이상의 야심을 가지고 있을 것인 만큼 당의 혁신이 대선 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당으로는 현상유지는 몰라도 더 큰 정치적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비대위원들이야말로 잘 알 것 아닌가 하는 사실에 그나마 기대를 걸어본다.

새정치연합 비대위원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명량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계파 수장 간의 담합에 의한 편안하지만 패배를 향한 ‘선조의 길’을 갈 것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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