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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잘못된 사람만 고르기도 어려운 선택.”

지난 칼럼에서 나는 국민들에게 절망감만 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행태가 정부와 다르지 않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인사’는 공천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7·30 재·보궐선거의 공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 큰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야 현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쳐주자. 문제는 현 정부의 인사를 비판해왔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봐야 별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국회의원 공천도 이 모양인데, 집권한다고 갑자기 인사를 잘하게 될 것인가?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번 공천으로 선거의 지역구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경기지사를 지낸 사람을 연고도 없는 동작에 공천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다가 김문수 전 지사가 거절하자 중구가 지역구였던 나경원 전 의원을 공천했다. 새정치연합은 한술 더 뜬다. 광주에 신청한 사람을 동작으로 끌어올리는가 하면 경남지사를 지낸 사람을 김포에 공천했다. 경기지사를 했으면 경기도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는 것인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광명에서 분당으로 지역구를 옮기더니 이번엔 수원에서 출마한다. 거주지역이 어디든 필요하면 아무나 공천하고 그리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이 안철수 공동대표가 말하는 새 정치인가? 그러면서 장관 후보들의 위장전입은 왜 비판하는가? 하긴 안 대표가 정계입문한 것 자체가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X파일 폭로와 관련해, 의원직을 상실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무 연고도 없는 그 지역으로 날아가 의원이 됐다. 그러니 거주지역을 무시하고 공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7·30 보궐선거 후보자 공천장 수여식에서 기동민 서울 동작을 후보(오른쪽)에게 공천장을 수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회의원 선거만이 아니다.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의 대학에서 근무했고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경기도로 주소를 옮겨 경기도교육감에 출마했고 게다가 당선까지 됐다. 경기도에 근무하지도, 살지도 않았던 사람이 경기도 교육을 책임진다? 웃기는 일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공천에 지역연고를 중시했다면 이제는 아무 데나 공천하고 출마하는 기이한 행태가 생겨났다. 지역주의 등 여러 병폐에도 지역구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 지역문제를 잘 풀어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거주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공천할 바엔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는 것이 낫다. 그리고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제 내지 순수비례대표제를 채택해야 한다. 즉 전국에서 300명을 뽑는 것이다. 그러면 ‘대구 국회의원’, ‘광주 국회의원’은 사라지고 모두가 전국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될 것이기 때문에 망국적인 지역주의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출마자격을 ‘2년 이상 거주’ 식으로 제한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미 언론에서 정략공천이라는 비판을 듣는 전략공천이다. 이는 정략성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사 전략공천이 정략이 아닌 순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반민주적인 상명하복식 밀실공천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주민들이나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경선이 개혁적이고 좋은 후보를 뽑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어쩌면 현재의 우리 여건에서는 나쁜 후보를 뽑을 확률이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번처럼 전략공천을 남발할 바엔 왜 선거를 하고 민주주의를 하는가? 국민들이 올바른 후보를 뽑는다는 보장이 있어 대통령 선거를 하는가? 국민이 올바른 대통령을 뽑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들이 ‘대통령 선발위원회’를 만들어 ‘전략선발’하지, 무엇 때문에 복잡한 선거를 치르는가? 전략공천은 한마디로 “해당 지역 당원들과 주민들은 우매해서 제대로 된 후보를 뽑을 능력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뽑아준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위험한 발상이다. 선거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중에 대한 신뢰, 대중의 선택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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