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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고려할 때 질 수 없는 선거를 새정치민주연합은 또다시 죽을 쑤고 말았다. 지난 칼럼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7월21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당 지도부가 현 정부의 인사 이상으로 한심한 공천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 칼럼에서 비판했듯이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지역구와 전혀 연고도 없는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했다가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새누리당의 토박이 신인들에게 전패한 것은 지도부가 얼마나 민심을 모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론이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특정 정치인을 배제하려는 정략에서 시작했다니 한심하다. 전혀 연고도 없는 지역에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하면서 비슷한 중진인 정동영, 천정배에게는 왜 공천을 주지 않았는가?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당 대표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과 다르게 정파주의를 넘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무성 당 대표 등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비주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당이 잘되고 우리 계파가 잘못되느니 당이 잘못되더라도 우리 파가 잘되는 것이 낫다”는 정파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선거 패배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퇴진하고 비상대책위가 들어섰지만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비대위라는 이름에 걸맞은 ‘비상함’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박영선 위원장이 한 첫 작품이 ‘세월호특별법 항복’이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니 ‘비상하게 항복’했다. 새정치연합은 2007년 대선 후 패배에 익숙해진 탓인지 패배해도 ‘비상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10일 오후 서울 구로동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한신대 신학생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나는 민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패배 후 혁신을 하지 않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독이 됐다고 비판하며 혁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도 민주당은 “정권을 상납하기 위한 자해특공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문 의원이 해야 할 제1과제는 당의 혁신이라고 지적했지만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비대위를 내세웠지만 “이름만 비대위지 비대위 위원장 선출에서부터 그 내용은 비상한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며 2017년 대선도 희망이 안 보인다고 쓴 바 있다. 이번에도 습관적이고, 통과의례적인 비대위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새정치연합의 대부분의 관심은 비대위가 아니라 비대위 이후, 즉 2016년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권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 한마디해야겠다. 안 의원이 측근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는데 “선거일정에 쫓겨 실현하지 못한 정치혁신 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측근이 언론에 밝혔다. 안 의원이 선거일정에 쫓겨 정치혁신 과제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공천과 선거는 정치의 꽃이고 혁신의 핵심이다. 이를 놔두고 정치혁신을 하겠다고? 소도 웃을 이야기이다.

안철수 실험의 실패는 혁신을 할 수 있는 당권을 쥐고도 정파적 이익에 사로잡혀 공천과 선거혁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시킨 데 있다. 두 번의 공천과 선거에서 새정치도, 안 의원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던 국민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계인 조배숙 전 의원이 안 의원이 “민주당 내의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해 새정치를 실천한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 것도 문제다. 이번 선거의 공천이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실패한 결과란 말인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다만 안 의원이 김한길 전 공동대표에게 속아서 허수아비 노릇만 하고 혁신을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즉 기득권 세력이 김 전 공동대표를 칭하는 것이라면 말이 되는데 실제 그랬는가는 모를 일이다.

‘비상함’ 없는 비대위와 반성 없는 안 의원으로는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의원총회를 통해 합의안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한편 박영선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비대위원장과 위원들을 외부로부터 영입해 원점에서 당 해체 수준의 발본적인 혁신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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