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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어느 문학 강좌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세 딸이 달려왔다. 그중 누가 가장 서글프게 울까. 학생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큰딸을, 작은딸을, 막내를 꼽았다. 그때 나는 딴생각이 있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세 딸 가운데 가장 섧게 우는 이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도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요? 학생들이 묻자 교수는 그중 가장 가난한 이라고 답했다. 가장 가난한 이가 가장 섧게 운다. 퍽 인상적이었던 터라 이후로도 나는 이 장면을 복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애정의 유무나 깊이와는 무관하게 어머니의 초상을 비빌 언덕 삼아 마음 놓고 울 수 있으려면 얼마나 한이 쌓여야 하는지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그런 생각에는 순결하고 비참한 삶의 진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누군가를 깊은 울음으로 인도하는 슬픔이 그 자신의 존재의 형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진실이 담긴 것만 같았다.

이 진실 탓에 나는 오랫동안 불편했다. 그 장면을 복기할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은 또 다른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중학생이었을 때 가까운 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솔밭에서 갈퀴질을 하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당신을 보았던 터라 내게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 가운데 하나다. 타지에 사는 어르신의 피붙이들이 달려왔다. 과묵한 아들들의 조용한 곡소리야 그러려니 했으나 딸의 울음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역시 딸자식밖에 없다며 눈가의 눈물을 찍어냈는데 큰며느리가 상가에 도착하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돌아가신 어르신은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짜했고 큰며느리는 천하제일의 ‘백여시’ ‘불여시’ ‘구미호’로 일컬어지는 분이었다.

장편소설 <서울>출간한 소설가 손홍규 _김정근기자


이 두 거인이 서로를 노려보면 볕 좋은 겨울날 떨어질락 말락 간당거리는 팔뚝만 한 고드름 밑에 선 것처럼 지켜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해졌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앙숙이었고 비록 큰며느리가 타지에 살아 일 년에 몇 번 모습을 드러내는 게 고작이었음에도 동네 사람들은 이웃하여 사는 것처럼 일쑤 큰며느리의 언행을 화제에 올리곤 했던 거였다. 어쩌면 모두들 큰며느리의 분탕질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큰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영정을 부여잡고 숨이 넘어가도록 통곡하고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땅바닥을 구르고 기어이 피를 흘릴 때까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큰며느리의 절망적인 통곡에 비하자면 심금을 울리던 딸의 울음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큰며느리의 통곡에는 까맣게 잊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불러들이는 힘이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린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큰며느리의 효심을 칭송했다.

이로써 사태는 완전하게 정리가 되었다. 초상집의 승자는 큰며느리였고 길이길이 효부로 회자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이들의 눈을 잊을 수 없다. 절규하는 큰며느리가 불러일으킨 당혹, 순수에 가까운 몸부림이 불러일으킨 슬픔, 둘 사이가 어떠했느냐를 넘어 과연 인간이란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불쌍한 존재가 아니냐는 깨달음이 번져가던 눈동자들. 원망을 담아 하늘을 우러르던 큰며느리의 눈까지도.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가난한 이가 가장 서럽게 운다는 해석에 동감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난해서였고 언제든 핑계만 생기면 울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동시에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서른 해 가까이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어쩌면 큰며느리가 그토록 섧게 울었던 건 이제 결코 화해할 수 없다는 절망,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을 단 한순간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역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널브러진 갈퀴 옆에 곱게 쓰러져 있던 어르신을 등에 업은 막내아들이 고무신이 벗겨진 줄도 모른 채 맨발로 울면서 달려가던 장면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른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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