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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주 인사동과 사간동의 전시장에 나가서 전시를 보는 편이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곳뿐만 아니라 골동품 가게들 역시 부지런히 다닌다. 해찰이 심한 나로서는 다양한 볼거리에 탐닉한다. 가능하면 많은 전시를 보려고 애쓴다. 미술평론가로서의 죄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미술작품을 보면 여전히 감동스럽고 흥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내 몸의 감각이 죄다 살아나 발기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내 삶은 평생 나를 사로잡는 이미지 하나를 찾아 절박하게 떠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소박한 골동품이다. 선인들이 만든 작고 아담하고 기품 있는 물건들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취향은 특정 이미지를 편애하고 옹호하는 일이다. 또한 취향은 단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감정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내 취향을 전적으로 만족시켜주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생활에서 자연스레 길어 올린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손맛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밀어낸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동시대 미술보다 옛사람들이 만든 것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선인들이 만든 것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쓰였던 실용적 차원의 물건이자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기능했던 것들이다. 근대 이후 일상적 삶의 맥락에서 탈각된 그 사물들이 박물관으로 이동하면서 전시가치로, 미술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인들이 남겨 놓은 상당수 물건, 이미지에는 신실한 마음과 한없는 정성, 그리고 무심함이 스며들어 있고 당대 삶의 이치와 그로 인한 배태된 아름다움의 형식이 격조 있게 놓여있다. 과도함과 억지, 기이하거나 천박한 장식이 없다. 의도적인 꾸밈이나 과장된 수사가 지워진 저 물질의 민낯과 그 표면에 최소한으로 개입해 만든 인공의 흔적들이 조화를 이룬 것들을 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10일 서울 인사동 우림갤러리에서 열린 ‘인사 고미술 잔치’에서 관람객들이 도자기와 민속품 등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하고 있다._경향DB

우리 옛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지닌 미감의 특성은 ‘생활 감정의 규모’를 결코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활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연한, 자연스러운 미감을 즐겨왔고 생활 가운데서 우러난 아름다움을 즐겼다.

지난주 인사동에 나가 작은 토기 잔 하나를 구입했다. 삼국시대 것이다. 오래전부터 옛사람들의 것을 하나씩 사서 모아두고 있다. 내 삶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작고 저렴한 것들이다. 그렇다 해도 분명 내 살림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해 구입한 작은 토기나 목기 등을 연구실 책상에 풀어놓고 반복해서 바라본다. 이 비좁은 연구실에서 나는 저 사물들과 독대하면서 늙어간다. 책을 읽다가, 원고를 쓰다가 문득 고인들의 그림이나 그릇, 연장 등을 바라보면 문득 내 삶의 근원을 새삼 추억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억척스레 살아낸, 그 생의 이력들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아름다움의 비밀도 마주한다.

미술이란 것이 결국 아름다운 생활을 위한 시각적 안목을 키우고 생활 속의 시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미술의 가치는 삶의 의미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데 있다. 반면 오늘날 생산되는 무수한 미술품들은 과연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 삶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과연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으로부터 고민해서 길어 올린 흔적들이나 자기 생의 가치와 철학, 의미를 담보하고 있기나 한 걸까?

그보다는 과도하게 현학적인 주제 혹은 서구의 현대사상과 미술개념 등에 휘둘리거나 과장된 수사, 공허한 수식어에 기대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거나 천박한 장식물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필요성에서 길어 올리면서도 그 안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감을 절묘하게 두르고 있는 저 작은 토기 잔 하나를 보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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