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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보수정권 집권 이후 남북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점점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을 한국과 동일 수준에서 비교하거나 심지어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 체제의 비민주성과 북한 주민의 낮은 인권 수준을 한국의 여러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바로미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북’ 역사교과서를 척결하겠다면서 오히려 북한식 전체주의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는 식의 모순적 사례들이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고도의 자본주의 문화가 맹목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할 때 어떻게 북한식 전체주의 문화와 닮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국 아이돌 팝의 생산 시스템은 사회주의적 집단창작 시스템과 흡사한 형태로 가동된다. 여기에 개인의 자율성이 개입할 여지란 거의 없다.

자본주의 대중문화가 으레 그런 것 아니냐는 점잖은 반론은 한국 아이돌 산업 구조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장기계약과 이성교제와 같은 개인 사생활을 금지하는 등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히 전제된 불공정 전속계약 시스템에 의지해 발전해 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MBC ‘PD수첩’과 같은 비판 언론에 의해 ‘노예계약’으로 고발됐던 이러한 계약 관행은, 헨리 젠킨스가 말한 ‘컨버전스 문화’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K팝’과 ‘한류’의 글로벌 경쟁력을 만드는 데 기여함으로써 서서히 ‘선진적’ 계약 시스템으로 인식 전환하는 데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소속사에 전권이 부여되는 한국식 계약 시스템이 아니라면, 예컨대 ‘걸스데이’의 혜리가 걸그룹 공연 활동과 함께 TV 예능 출연, 드라마 연기 활동까지 효율적으로 병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대한 대중 앞에 노출될 기회를 갖고 싶은 아이돌 스타 지망생들은 소속사 대표의 손에 기꺼이 제 몸의 사용권을 내맡기는 것이다.

Mnet 프로듀스101’ 제작발표회_경향DB

이로써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선진적이라 자부하는 스타 육성시스템은 역설적으로 관료화된 사회주의 예술교육 시스템과 닮아 간다. 중소기획사의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 합숙생활을 불사하며 평균 4~5년 이상을 버티곤 하는 이른바 ‘연습생’들의 생활방식은 북한식 사회주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을 위해,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정언명령은 그들에게 맹목의 이데올로기가 되어가며 그 명령의 주체는 각자의 내면에 있기보다 소속사 대표로 인격화되고 권위주의적으로 우상화된다. 언젠가 SNS에 공개돼 화제가 된 유명 기획사 대표의 ‘지시사항’ 문건에서 연습생들에게 요구된 제일 명령은 “소속 가수들 및 직원 분들을 보면 90도로 큰소리로 인사하도록 해라”는 것이었다.

아이돌 산업에 관한 한 한국의 기업과 방송은 이미 전체주의적으로 통합됐다. 유력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공중파 방송에서 시즌별로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자회사 홍보와 사실상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으로 사유화한다. 엠넷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프로듀스101>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시청자들은 50여개의 기획사들이 위계적 구조 속에서 연합해 벌이는 공개채용 과정(사실상 인턴사원 해고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악의적 편집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등의 독소 조항이 담긴 방송사와의 ‘노예계약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프로그램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101명의 ‘연습생’들은 매주 탈락과 좌절의 위협 속에서 출연료 한 푼 받지 않는 사회주의적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

평범한 10대들 다수가 자신의 일상적 태도와 정서적 모델을 아이돌 스타로부터 구하는 이 아이돌 공화국에서 그것은 북한식 국정교과서 도입만큼이나 무서운 일이 아닐까? 끝없이 지연되는 ‘성공’의 꿈에 가둬진 잠재적 아이돌 지망생들의 인권침해를 일상화하고 있는 저 거대한 권위주의적 구조를 용인하고 내면화하며,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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