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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입장 표명은 꺼리는 편이다. 입장을 내세울 필요도 없을 만큼 한심하기 때문이다. 분노에 쓰이는 에너지를 축적해둬 일상을 버텨나가고 싶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정의는커녕 희망조차 없어져버린 ‘헬조선’ 아닌가. 그러니 사람들이 미국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일종의 판타지 시청과도 같다.

2007년, 2012년 대선을 거치며 공허와 좌절을 맛봤던 우리니까. 그러니 오바마가 외친 ‘변화’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낳는 과정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정책을 떠나 그가 연설을 통해 제시하던 명징한 메시지와 세련된 화술을 부러워하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의 집권 8년 동안 한국은 뭐든지 해봐서 아는 대통령과 아무것도 안 해봐서 뭘 할지 모르는 대통령이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거꾸로 흐르는 한반도의 시간이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 도달할지 예측조차 불가능한 지금, 힐러리 대세론을 무색하게 하고 급부상 중인 버니 샌더스에게 한국인들이 느끼는 건 또 하나의 대리만족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불공평의 해소를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그다. 선거용 캠페인이 아닌 50년의 정치 인생을 통해 일관되게 하나의 메시지를 주장해온 진정성이 최대의 무기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다시 존경받을 만한 세계 최강국의 이미지를 회복한 미국에 그보다 더 개혁적이고 급진적인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보들의 세부 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지지를 결정하기보다는 핵심 아젠다와 이를 메시지화하는 방식, 그리고 이미지가 선택의 동인이다. 후보를 지지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일종의 용기처럼 여겨지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극히 일상적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_AP연합뉴스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는 특히 흥미롭다. 힐러리와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극명히 갈리기 때문이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팝스타’들이 많다. 음악을 통해 막대한 부귀영화를 일궈낸, 즉 보다 상업적인 스타들이라는 얘기다. 카니예 웨스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존 본 조비, 엘튼 존, 퀸시 존스, 레이디 가가, 그리고 민주당 지지 음악인의 대모격인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샌더스 지지자들은 60~70년대 히피-프로테스탄트 시대의 음악인들과 90년대 이후의 인디 성향 음악인들이 많다. 아트 가펑클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America’를 샌더스의 캠페인송으로 사용하게 해준 것을 비롯하여 닐 영, 잭슨 브라운,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로저 워터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슬립낫 등이다. 그 외에도 최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젊은 음악인들은 대부분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봐도 좋다.

나에게도 미국 대선은 일종의 정치 판타지다. 하지만 두 후보를 지지하는 음악계의 형세에서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읽는다. 후보들이 가진 ‘가치의 지도’가 명확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선구자들, 비주류에 머물지언정 자신의 음악적 지향을 버리지 않는 도전자들, 음악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선동가들이 있다. 그들에게 메시지는 음악 그 자체이며 삶이 곧 음악이다. 그런 이들이 하나같이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다.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정치와 만나고, 정치는 이 만남을 통해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럴 때마다 느낀다. 미국의 힘을. 그리고 한국의 현실을. 누굴 탓하지는 말자. 한국의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기가 힘든 이유는 그저 탄압에 대한 두려움뿐이 아니니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분법적 배제, 문화예술인들을 하등하게 보는 무의식 같은 건 어떤 진영에만 국한된 게 아니니까.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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