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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은 아니지만 자주,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면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일이 잦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얻어듣고 뭔가를 알아보려 해도 사건의 개요는 벌써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무수히 남은 뒷담화만 얻어듣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마디 던지는 말은 그야말로 뒷북을 치거나 봉창을 두드리는 한심한 수순을 밟기 마련이다. 보는 둥 마는 둥 해도 그저 몇 장 넘기는 것만으로 세상사의 흐름을 감지했던 종이신문을 끊고 나서 이런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인터넷의 포털사이트에 떠 있는 온갖 매체를 대강이라도 훑어보리라 작심하고 어느 날 뉴스를 접하기 위해 포털을 열었다가 예의 또다시 기겁하고 말았다. 아침에 개똥이 척 하고 묻어 있는 신문을 손끝으로 집어드는 느낌.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신문을 매일 보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네이버와 같은 포털의 메인화면에는 수십 개의 일간지와 경제지, 스포츠신문,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인터넷 신문들이 떠 있다. 그야말로 정보들이 둥둥 떠다니는 셈인데 이게 다 공짜라는 거다. 이런 걸 보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하면 곧바로 저주의 심정이 되어버리는데, 질퍽거리는 늪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다. 눈을 어지럽히며 출몰하는 온갖 민망한 색깔의 벌레들과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화들짝 화면이 뒤집히며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이곳은 한 발자국도 헤쳐가기 힘든 정글 속이다. 매일 이런 숲을 통과하고도 멀쩡한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그런 덫을 설치한 정보강국, 인터넷 언론의 속살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복잡하고 현란한 디자인이야 취향의 문제로 말하면 그뿐이지만 정말 더럽고 지저분해서 못 보겠다. 여기에 언론이란 말을 붙이는 것조차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다 알게 된 아주 신기한(?) 현상은 이 땅의 보수를 가늠하는 분명한 척도를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수인지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따위는 묻지 않기로 하자. 그 기준이 아무리 모호해도 진보와 보수(그들이 각자 표방하는 대로)는 자신의 가치가 어떻게 사회에서 통용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 비교적 명쾌한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네이버 메인화면 뉴스_경향DB


보수적 언론과 진보적 언론을 나누는 게 더 이상 유효한 기준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의 메인화면을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철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각적 판단 기준은 유감스럽게 너무 단순하다. 보수를 표방하는 언론일수록 화면이 더 지저분하다는 것. 반드시 살색의 이미지와 이에 상응하는 머리기사를 올린다는 것. 안으로 들어가면 기사의 주변에 수십 개의 이미지들이 더 많이 달라붙는다는 것. 이런 디자인적 혹은 시각적 현상을 해석하면(사실 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화면이 지저분하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각적 자극의 요소를 담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광고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급기야는 제호와 화면이 완전히 불일치하는 신문도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언제부터 스포츠와 포르노가 동일한 의미가 되었는지 몰라도 보수언론이 발행하는 스포츠신문의 메인화면에는 단 하나의 스포츠 기사도 없이(어쩌다 가끔 한두 개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살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현란한 이미지들과 자극적인 문구들의 숲을 통과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보수적 가치를 가늠하는 유일한 기준은 돈이며 그 밖의 가치들은 그 단 하나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사들에 불과하다는 것. 그 명쾌한 원칙에 그토록 철저할 수 있었기에 이 땅의 보수들이 요지부동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화면을 만드는 사람도 그리고 그걸 감내하는 사람도 무던히 넘어가는 이유는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거부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몽땅 보수?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하긴 이런 푸념조차 때늦은 뒷북일 뿐.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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