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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학생들에게 영어 이름과 함께 자기 소개를 원했다. 내 순서를 마치자 마사오라는 일본인이 말문을 열었다. 유순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일까. 선생들은 그를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그는 20년 전 미국 어학연수원에서 만난 인물이었다.

학급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는 3명 정도였다. 그들의 국적은 루마니아, 이란, 일본이었다. 친밀감을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은 바로 눈빛이다. 수업을 마치면 그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관계의 지속 가능성은 호감도의 유효기간과 비례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루마니아인이었다. 직장인이라는 점도 공통분모로 작용했다. 문제는 영어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1개월 만에 학급에서 회화 실력이 급상승한 것이었다. 자신감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그는 차츰 우리와 어울리기를 부담스러워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피차 비슷한 목적으로 미국행을 시도한 어학연수생의 딜레마였다.

다음은 마사오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한다는 일본 호텔 체인점을 경영하기 전에 보스턴행을 결심한 그였다.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상쇄시켜줄 만한 친구라는 기대는 보스턴의 봄과 함께 사라졌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노모라는 일본인 투수가 선발진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인 마사오는 늘 야구 이야기를 대화 소재로 삼았다. 주말에 펜웨이파크 야구장에 가자는 그의 제안에 나는 상대 팀을 응원하겠다고 전제했다. 순간 마사오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토요일에 등판하는 노모를 응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른 팀을 응원하며 야구를 즐겼다. 결과는 노모의 선발승이었다. 경기장을 나오면서 마사오가 말을 건넸다. 한국프로야구 선발투수의 연봉을 묻는 질문이었다. 

순간 마사오의 의도가 보이더라. 그는 빠른 어투로 일본에는 메이저리그 수준의 연봉을 받는 투수가 허다하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 대답은 명쾌했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해줬다. 마사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흘리다 다시 예전의 미소를 되찾았다. 이후 마사오는 나를 조금씩 멀리했다. 이유는 역시 서로의 눈빛이었다. 

두 번째 만난 일본인 겐지는 재즈피아니스트 빌 에번스를 좋아했다. 이번에는 야구 대신 음악을 매개로 인연을 이어갔다. 겐지의 성향은 마사오보다 일찍 드러났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마흔줄의 일본인 여성을 보며 내게 이런 말을 흘리더라. 저 나이에, 저 외모에, 저 행색에 어학연수가 어울리냐는 뒷담화였다. 순간 겐지의 어투에서 마사오처럼 가깝지만 먼 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혼네와 다테마에로 무장한 일본인의 두 얼굴이었다. 겐지에게 물었다. 나이나 외모, 행색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냐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일본인은 한국인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어쭙잖은 변명을 남겼다. 일본인의 가치관이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하는 일이냐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마사오나 겐지나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울타리에서 맴도는 인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과의 문화전쟁이 한창이다. 앞으로도 일본은 미·중의 눈치를 살피며 한국을 이용하고 자극할 것이다. 다행히 일본은 1980년대의 경제동물이 아니다. 혁명으로 극우정권을 바꾸지도 못한 정치 무관심의 나라다. 21세기에 안 어울리는 수동적 국민성을 고집하는 전범국가다. 여전히 스스로가 서유럽의 일부분이라 여기는 퇴행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늘이다.

혼네와 다테마에. 언행일치를 가벼이 여기는 기미가요의 섬나라. 지금이야말로 일본과의 비교우위를 단단히 준비할 시기다. 혼네와 다테마에의 정치논리를 역이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전쟁국가로의 재건을 모색하는 아베 정권에 맞설 만한 국력의 신장은 물론이다. 욱일기를 휘감은 부패한 극우정권의 미래는 없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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