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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비와 함께 촉나라를 세운 제갈량과의 가상 인터뷰다.
-문화중독자(이하 ‘문’으로 표기)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제갈량(이하 ‘제’로 표기) : <삼국지>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제갈량이다. 촉의 책략가로서 전장에서 생을 보냈다.
-문 : 제갈량 하면 무엇보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세 번의 거절 끝에 승낙을 얻어낸 삼고초려가 인상적이다. 거절을 반복했던 이유는.
-제 : 유비에 대한 좋은 평판은 익히 들었지만 인간의 본성은 직접 부딪쳐 봐야 아는 법이다. 요즘처럼 사이버공간에서의 소통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위인의 그릇이란 상대방의 거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처하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 : 당시 유비의 힘은 대단치 않았다. 세력이 막강한 조조를 주군으로 삼을 계획은 없었는지.
-제 : 조조를 택한다면 빠르게 정치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소시민으로 생을 마친다 해도 별 미련이 없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권력의 무게보다는 인품의 깊이를 영웅의 잣대로 삼았다.
-문 : 적벽대전에 관한 질문이다. 오나라 수군을 이용하여 조조에게 대승을 거둔다.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제 : 오나라와 위나라 모두와 싸워야 할 상황이었다. 더욱 힘들었던 부분은 나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내부세력이었다. 관우와의 정치적 관계설정이 적벽대전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내외부의 상대를 모두 회유하고, 굴복시켜야 했던 삼중고의 전쟁이었다.
-문 : 이후 관우는 손권과의 전투에서 패해 참수당한다. 이를 방관했다는 설이 있던데.
-제 : 나는 전략과 전술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직책이다. 관우는 전략가의 지시에 승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게 전략가와 전술가의 차이다. 그는 수많은 휘하 장수 중 한 명이었다. 정치란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이는 감정싸움이 아니다.
-문 :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없는가.
-제 : 모든 전쟁은 물리적 승리가 최종 목표이다.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평생 한 명의 주군을 섬기며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문 : 주제를 바꿔보자. 작금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평한다면.
-제 : 한반도의 위상은 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대국에 포위되어 끊임없이 정치적 혼란을 감수해야만 했다. <삼국지>에서 보듯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형국이다. 합종연횡이 이루어지는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변 강국의 전략을 역이용하는 교란지책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문 : 미 대통령 방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트럼프 정치성향에 대한 의견은.
-제 : <삼국지>를 예로 든다면 초반부에 등장하는 동탁과 비슷한 유형이다. 동탁 세력이 패망한 이유는 통치술의 문제와 함께 책사를 활용하는 영민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가족정치에 집착한다. 거물급 정치인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포석이다. 판세를 읽는 능력이 과거 대통령들에 비해 떨어진다.
-문 : 트럼프가 정치인으로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제 : 정치란 사업가 정신만으로 버틸 수 없다. 트럼프는 말장난이나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가족정치를 접고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통치방식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미국사의 그늘로 남을 인물이다. 적어도 국가의 수장이라면 곰의 끈기, 여우의 머리, 범의 심장을 고루 갖춰야 한다. 아니면 이를 보완해줄 노련한 참모진이 있어야만 한다.
-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 : 세상은 내가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 시시각각 변하는 강대국의 속내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 고도의 정치셈법이 필요하다. 미국 정권이 바뀔 적마다 북한과의 관계는 늘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는 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공조와 견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설득과 타협의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전쟁이란 자국민의 목숨을 담보 삼아 벌이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를 명심하기 바란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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