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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 촛불집회를 다녀왔습니다. 촛불집회를 마치고 조용한 카페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정치와 사회문화, 권력층과 관료, 학계 등의 소위 상부사회는 엄청난 역주행을 했었습니다.

1700만 시민의 촛불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막장의 골목으로 내달려, 전쟁의 비극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21세기 가장 슬픈 민족이 될 뻔하였습니다. 다 알다시피, 이명박 정권은 국가를 사유회사로 개조했고, 공공기관을 악덕 흥신소로 만들었으며, 국토를 유린하고 생태계 자체를 파괴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온갖 공작정치를 통한 반칙과 불법으로 정권을 봉건 공주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씨는 청와대를 비밀궁궐로 만들고 무능한 공주가 되어, 요괴 라스푸틴을 연상케 하는 최순실 섭정 정치가 발각되어 탄핵되었습니다. 결국 시민의 촛불이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지 않았으면, 정치적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일본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지냈지?’ 하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한 일은 조용히 반성문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식인이 아니었고, 정신과 의사로서는 부역을 했고, 사소한 무지와 작은 것들에 대한 분노로 비겁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이런 정부와 관료들에게 빌붙어서라도 연구용역이라는 이름의 돈벌이를 위해 애달파했었습니다.

그날 순간에 떠오른 반성적 과제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첫째, 이명박 정권 당시 노무현 정부하에서 제가 진행하던 청소년 프로젝트로부터 제외되었을 때 아무 저항도 안 하고 나왔습니다. 둘째, 이명박 정권이 정부 산하기관 이사직을 맡고 있던 저에게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퇴하시지요”라고 했을 때도 바보처럼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셋째, 교육감이 바뀌고 늘 하던 연수의 강사명단에서 제외되고, 관련 연구사가 섭외를 취소하면서, “위에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몰랐어요”라고 했을 때, 이를 그냥 두었습니다. 넷째,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소년교도소보다 정신장애인의 입원환경이 더 나쁘다는 것을 알고 충격만 받고, 글 한 편을 투고한 것 외에 아무런 사회적 고발이나 개선운동에 참여해오지 않았던 부도덕을 깊이 반성합니다. 다섯째, 그 이후에도 입원병실만 늘고, 지역사회 업무는 개선되지 않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정부사업의 위탁을 유지하고자 애썼던 저 자신을 정말 창피하게 여깁니다. 여섯째, 세월호 현장에서 당시 복지부 관료가 “월드컵이 세월호까지 다 잠재울 것이다. 조선 민족의 냄비 근성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그 앞에서 밥을 함께 먹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일곱째, 박근혜 시절 국정원에서 신원조회와 더불어 담당이라는 자가 전화해서 국가관을 A4 용지에 적어내라고 했을 때, 전화통을 붙잡고 지금 뭐하는 거냐 하지 않고 그건 너무 하지 않느냐 정도로 끝냈으며, 그 후 다시 연락 와서 노란색 근처에 가지 말라는 말에 침묵하고 씩씩대기만 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여덟째, 정권이 바뀌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굳세게 살아남는, 교묘하고 영리한 폴리페서들을 겉으로는 반대하고 속으로는 부러워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온갖 프로젝트를 받아 그 돈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사람들을 한편으로 닮고 싶어했습니다. 정치력과 사회기술이 없어서 함께해 온 우리 스태프들만 힘들게 해왔습니다. 아홉째, 10년의 적폐시절 영혼을 팔아온 관료, 영혼조자 없는 권료들을 미워하고 있으며 사회대개혁의 걸림돌이라고 책임전가하고 있는 저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끝으로 시민 편, 환자 편, 청소년들의 편, 그리고 그 가족들의 편이라고 말하고 돌아다녔지만, 실제로 뜨듯미지근하게 살면서 여전히 술 마시고, 연줄과 패거리 찾고 있는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아마 이 수준의 반성으로는 모자랄 것입니다. 10년 적폐산하에 살다보니 드브레라는 리옹대학 교수가 말한 것처럼 허위, 위선, 직무유기, 무력함을 떨쳐내야 할 것입니다. 통렬한 반성이 아니라 종말을 고한 지식인의 변명이 되었습니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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