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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시골에 내려와 몇 년 살고 나면, 저마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몇 가지 생깁니다. 그렇게 흔히 하는 이야기 가운데, “그거 농사짓는 거 보고 있자니까, 아이고 그거 못 먹겠더라. 농약을 얼마나 치는지” “아니 그 돈 받자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요?” 하는 말 따위들입니다. 작물마다 특히 농약을 자주 치는 것이 있습니다. 과일은 대개 약을 많이 치기도 하고,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과수원에서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약을 뿌리니까, 더 많이 농약을 치는 것 같지요. 그러면 그 과수원 농약 치는 것 몇 해 지켜보고는, 그 과일 못 먹는다 소리가 나옵니다.

올해 타작이 끝나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을도 금세 끝나 갑니다. 아직도 “가실(가을) 다 했나?”라고 하시는 할매들이 있으니까요. “다 거뒀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둘 나락 벤 도가리가 느는가 싶더니, 금세 들이 다 비었습니다. 벼농사는 그래도 농약 쓰는 것이 더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여기 가까운 지역으로는 논에 우렁이를 넣는 농법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금세 퍼졌어요. 십년 전, 제가 처음 논에 우렁이를 넣을 때만 해도, 친환경 농법 좋은 줄은 알지만 “그거 그리해 갖고 풀한테 못 이기” 하시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어르신 논에도 우렁이가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어느 논이든 선홍빛 우렁이 알이 매달려 있었지요. 몇 가지 손이 조금 더 가기는 해도, 약 치는 것만큼이나 풀도 잘 매고, 돈도 많이 들지 않는 방법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올해 처음 우렁이를 넣은 어르신은 “우렁이, 그기 솔찬이 풀을 먹었어” 하셨지요. 우렁이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농사꾼 어르신들이 이제 논에 약 한 번 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에 그랬듯이, 올해 쌀값 이야기가 또 몇 번 여기저기에 오르내립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쌀값 소식도 분위기가 조금 바뀝니다. 얼마 만에 쌀값이 조금이라도 오를 것이라는 뉴스인지 모르겠습니다. 콤바인 옆에 몇 사람 모여서는 해가 바뀔수록 더 나아지겠지 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농사에만 꼬박 매달려 한 해를 보내신 분들입니다. 초여름 매실 딴 것부터 해서, 토란 껍질 벗겨 말려서 판 것, 나락 난 것, 감 따서 낸 것, 콩 털어 넣어 놓은 것. 그렇게 해서 한 해 얼마치를 했는지 어림합니다.

빠지지 않고 하시는 이야기로 “나락 농사할 때에 우렁이 넣기를 참 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농사꾼한테 농약 치는 일은 피할 수만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잘 안되지요. 물건 사는 사람이 겉모양을 많이 보는 것일수록 그렇습니다. 과일이 그렇고, 채소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벼는, 쌀알 모양은 엇비슷하니까요. 어르신이 우렁이 칭찬을 하면서 조금 웃으셨습니다. 농약 치는 거 보면 그거 못 먹는다는 이야기 뒤에는, 우렁이한테 정말로 고마워하는 할배가 있습니다.

시골에 새로 내려온 사람들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입에 달고 사는 질문 몇 가지는,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묵은 질문 몇 가지에 닿아 있습니다. “농사꾼이 받는 값과 시장에서 파는 값은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나. 많이 심어서 값이 바닥을 쳤다는 것과 적게 심었다고 금값이 되는 작물은 어째서 해를 건너 꼬박꼬박 되풀이되나. 어쩌자고 도시 사람들은 농약 잔뜩 쳐서 매끈한 것만 찾고, 벌레 조금 먹었다고 하는 것은 받아 주지도 않나”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해묵은 질문들도 새로 들리는 쌀값 소식처럼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실 일을 마치고, 겨울 농사 준비가 시작됩니다. 지난달 심어 두었던 마늘이며, 양파들은 벌써 꼿꼿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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