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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는 마을공동체 관련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올해의 마을살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행사들이 겹쳐서 모두 둘러보지 못해 아쉬운데, 올해는 안산의 ‘2017 전국 마을박람회’ 화성의 ‘마을공동체 한마당’에 다녀왔다.

안산의 행사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화랑유원지, 경기도미술관, 단원구청 등에서 다양한 마을정책콘퍼런스와 주민들의 야외포럼이 열렸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곶안: 곶 안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고잔동 문화마을 교과서를 펴낸 디자인 전문팀 ‘강장공장’의 강진영·장재욱 공장장과 마을공간 ‘소금버스 협동조합’의 노승연 대표가 함께한 토크콘서트였다. 안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세 사람이 주민들과 얘기 나누며 풀어낸 글과 주민이 직접 기록한 사진으로 꾸며진 책에는 고잔의 역사, 지리, 사람, 마을 이야기가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좀 걱정스럽긴 했지만, 알아서 하라고 믿고 맡겼어요. 시작할 때 한 번 보고 다 끝났다고 연락 와서 두 번 보니, 예쁜 결과물이 만들어져 있더군요”라는 시청 담당자의 자랑에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줘야 하는 외주작업과 달리 우리가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을 들일 수 있었고 애착이 가는 책이 나온 거 같아요”라고 화답했다. “네 모든 사소한 행동까지 이제 다 떨려. 네가 너무 빛나서….” 주민들과 그들의 일상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난다. 그 빛이 드러나도록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면 공공도 같이 빛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축하공연을 온 ‘그루잠’의 ‘좋아서 빛나서’의 가사와 자연스레 포개졌다.

화성의 마을공동체 한마당에서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마을에서 마을을 배우다’라는 주제의 ‘마을로 찾아가는 작은 콘퍼런스’와 ‘화성,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라는 주제의 기획콘퍼런스, 주민들이 준비한 한마당 공연 등이 펼쳐졌다. 기획콘퍼런스에서 다룬 것은 수개월 동안 화성주민들이 모여서 스스로 수립한 ‘화성시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의 수립과정과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주민주도 마을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화성시의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은 4월13일부터 10월11일까지 총 15회에 걸친 주민모임을 거쳐 수립되었다. 2주에 한 번꼴인데 숨 가쁜 일정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만든 기본계획에는 마을만들기비전, 중점과제, 세부과제, 단계별 추진체계, 주체별 역할, 제도개선방안, 연차별 예산계획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전문기관에 맡겼다면 수억원이 소요되었을 작업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노력으로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절감하였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결과는 주민들 스스로 낸 의제와 계획이라는 점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수립된 계획과 달리 실제 마을현장의 고민이 담긴 것이기에 단순한 페이퍼플랜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콘퍼런스에 참여한 몇몇 활동가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위 ‘높은 분’의 간섭이 적었던 것이 마을계획이 ‘잘’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았다. 자율적으로 현장의 주무관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내용을 채워갈 수 있었고, 그 결과 훌륭한 기본계획과 더불어 “우리 팀장님 멋져요!”라는 공공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거버넌스를 통한 행정혁신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잘 풀어나가는 곳도 있지만 민관 갈등이 빚어져 풀기 힘든 과제라고 관계자들이 고개를 젓기도 하는데, ‘주민들이 스스로 빛나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방법이 성공적인 거버넌스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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